이후 30여년 동안 수많은 ‘OO노믹스’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게중에 DJ노믹스, MB노믹스, 콜레보노믹스, 위키노믹스 같은 용어들도 있는데, 모두 잠시 유행하다 사그라졌다. 이런 용어들의 명멸은 흔히 주도 세력의 부침(浮沈)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런 용어를 유행시키는 속내에는 ‘일정 기간 지속되는 정치 경제적 효과’를 바라는 의지가 스며있다.
이런 시속에 따라 한 가지 ‘OO노믹스’를 추가하고 싶은 마음을 동하게 만든 현상이 있다. 바로 ‘제주 올레 현상’이다.
이미 많이 알려졌다시피 ‘올레’는 제주도의 방언으로 ‘집안 현관문을 나서 대문까지 가는 길을 포함한 동네 골목길’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제주도의 골목길을 전부 올레라고 부른다. 제주 사람들은 "여기도 올레, 저기도 올레여, 올레가 따로 이시냐?"한다. 이 제주도의 골목길을 걷는 여행이 몇 년 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대한민국 관광여행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고 있다.
이미 15개 코스가 개발된 이 올레길은 제주도 사람들이 농사짓고 고기잡으며 살아가는 모습과 바다에 면한 아찔한 절벽, 바위섬들의 절경이 어울려 우려내는 가슴 뭉클한 풍경의 긴 꼬리로 이어져 있다.
이 긴 꼬리는 장가계나 태산 같은 입 딱 벌어지는 풍광에 익숙할 법한 중국 사람들도, 아기자기 가슴을 녹이는, 정밀하게 기획된 경관에만 홀릴 것 같은 일본 사람들도 마음을 열게 하는 마법의 코스들이다.
올레길 여행이 유행하면서 전국의 여행객들은 마법에 사로 잡힌 듯, 너도 나도 제주 올레를 찾아 1년에도 몇 번씩 제주를 다녀가곤 한다.
제주도 관광정책과 마케팅 담당자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현재 제주도 입도객 수는 424만여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1%나 늘었는데, 이 수치는 2008년 연간 입도객 증가율 7.2%에 비해 2.5배나 되는 것이다.
이 인원이 모두 올레길 여행자일리는 없지만 올레 여행이 유행하고부터 입도객 수가 부쩍 늘어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주도 관광정책과 사무실 안에 걸려 있는 ‘연간 670만 명, 3조원 관광수입 달성’이라는 현수막에 실감을 더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나아가 지금 전국에는 제주 올레와 같은 ‘걷기 좋은 길’들이 유행처럼 만들어져 사람들이 이제는 ‘먹고 노는’ 관광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두루 챙기는 질 높은 여행을 선호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의 성곽길, 지리산 둘레길, 강원도 고성의 관동800백리 길 등 문화와 인문학이 살아 숨쉬는 ‘길 여행’이 트렌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 올레 열풍이 불어 닥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올레길 여행이 돈 쓰는 맛을 즐기는 관광이 아니라 가급적 아끼고 발품팔며 자기성찰을 하는 검소한 수행의 컨셉이기에 경제효과 면에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올레 사람들은 어떡허든 돈 안쓸라고 해요. 항공사만 살판 났지 뭐" 인기 코스인 7코스 주변에서도 하루 2~3명 올레 여행객을 태울 뿐이라는 택시 기사가 툴툴 댔다. 제주도 관광정책 담당자들도 올레 여행의 경제효과를 지금 당장 가늠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항공사나 올레길 주변 숙박업소와 음식점들은 체감하는 바가 있지만, 아직 ‘대박’의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에서 70 평생을 살아도 올레길을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를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는 장모와 그 분의 두 딸을 모시고 올레길 7코스와 10코스를 걸으며 “참 좋다. 이렇게 좋은 줄 평생 동안 왜 몰랐을까? 이러니 도회 사람들이 그리 밀려들지.”하는 감탄사를 주워 듣다 보면, ‘올레’는 결국 ‘올레노믹스’로 번지겠구나, 예감하는 속내가 자연히 생기게 마련이다.
남제주 대정읍 인근 TV 드라마 '아름다운 인생'의 세트장과 송악산, 마라도 선착장이 연결된 올레길을 걸으며 한중일 삼국의 여행객들이 이 아름다움에 취해 주머니도 술술푸는 머지않은 미래를 예감하는 속내는 도회지 때묻은 속물근성의 발로일까? 아니면 처갓집 말뚝에 절하는 팔불출 심리의 발현일까?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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