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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
“그 ‘오만분지일’(5만분의 1) 지도, 그 조선소 짓겠단 백사장 사진, 그걸 들고가서 당신이 배를 사주면 영국 정부에서 차관을 얻어서 니 배를 만들어 줄 테니 사라, 이렇게 얘기했단 말야….”
최근 방송되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기업 PR광고 영상을 보면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우리는 할 수 있다’며 임직원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내용이다.
범(汎) 현대그룹의 모체는 현대건설이다. 하지만 옛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의 “이봐, 해봤어”로 대표되는 현대맨의 정신은 1974년 세워진 현대조선소, 즉 현재의 현대중공업그룹 설립 때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위 일화처럼 고(故) 정 명예회장은 1972년 아무런 자본과 기술 없이 자신감과 열정 하나만으로 영국 버클레이 은행과 스위스 해운왕 리바노스를 움직였고, 2년 3개월만에 조선소 건립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이뤄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은 처음으로 선박을 수주한 1974년으로부터 11년 만인 1985년 일본 미쓰비시조선소를 제치고 세계 최대 조선소로 올라서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나아가 지난해 현대종합상사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현대건설 인수전에도 나서며 옛 현대그룹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전화위복’ 된 왕자의 난= 범(汎)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2000년 소위 ‘왕자의 난’이라고 하는 경영권 다툼이 최대 위기였다. 고(故) 정몽헌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과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그룹이 분리됐다. 이 핵분열 여파로 현대중공업그룹도 2002년 현대그룹과 결별했다.
이 과정은 정 씨 일가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아픔을 줬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는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현대그룹이 대북사업 중단, 채권단과의 갈등에 따른 현대건설 인수자금 확보 난항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대차·현대중공업 등 다른 범 현대가 그룹사들이 영향을 받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것도 이 때 계열 분리로 생긴 ‘칸막이’ 덕분이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에 인수된 현대종합상사를 시작으로 ‘왕자의 난’ 전후에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현대건설, 하이닉스(옛 현대전자)도 속속 새 주인을 찾아가고 있다. 특히 현대건설은 연내 범(汎) 현대그룹 내 편입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오일뱅크 인수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가운데 2조원이 넘는 현금 보유고와 KCC 등 범(汎) 현대그룹의 지원을 바탕으로 옛 ‘현대왕가’의 본산인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31세에 대표 오른 정몽준 고문=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왕회장’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왕회장’의 일곱째(6남)인 정 고문은 1982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현대중공업 대표직에 오른다.
장남 격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차의 작은 계열사 현대정공에서 시작해 51세(1988년)가 되어서야 인천제철 사장에 오른 것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초고속 승진이었던 셈이다. 역시 고속승진으로 34세(1981년) 때 현대상선 대표에 오른 바로 윗 형(5남) 정몽헌 회장보다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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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 민 회장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대학원 해양공학 박사를 취득한 이공계 출신 전문경영인이다. 지난 2001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올 3월에는 회장직에 올랐다. |
결과적으로 그는 1988년 회장직을 그만두고 고문으로 물러나며, 최대주주(중공업 지분 11%)로써 경영상 중대한 결정 사항을 제외하고는 최길선, 유관홍 민계식 등 전문 경영인들에 맡기는 선진 경영을 실천하며 세계 제일 조선·중공업그룹을 지켜내고 있다.
◆25년 동안 지켜온 세계 1위= 현대중공업그룹은 현재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의 3개 핵심 조선 계열사를 비롯해 증권·상사 부문에 걸쳐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핵심 계열사이자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의 년 첫 선박 수주에 이어 1980~1990년대 현대엔진공업, 현대중전기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다.
지난 1985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제치고 세계 최대·최고 조선소로 올라선 이래 25년째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1조원, 영업이익은 2조2200억원이다. 1999년 수출 30억 달러, 2001년 수출 40억 달러, 2005년 수출 70억 달러를 기록하고 2007년 수출 100억 달러의 금자탑을 세운 국내의 대표적인 수출 기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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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현대중공업의 2번째 하이브리드 함정 '태평양 10호'(3000t급 경비함)의 해경 인도식 모습. 이날 인도식은 울산 본사 특수선 도크에서 오병욱 현대중공업 사장과 이길범 해양경찰청장 등 관계자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연합) |
과거 ‘현대왕국’ 건설에도 가장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것에 반해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한 데 이어, 올해 말로 예정된 현대건설 인수의 가장 유력한 후보다.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구(舊) 현대그룹의 상징인 현대건설을 소유하게 되는 명목상 이익 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내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더구나 기존에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과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을 합하면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의 경영권도 뿌리채 흔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순환출자구조 내에서 지주격인 회사다.
(아주경제 김형욱·김병용·이정화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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