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미호 기자) 온전히 제 모습을 찾은 광화문이 오는 15일 광복절 날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1864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을 기준으로 하면 145년만이다. 또 6·25전쟁을 기점으로 하면 60년만에,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1차 복원을 기준으로 하면 42년만에 제모습을 찾는 것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복원됐을 당시 광화문은 온전치 못했다. 사라진 목조 부분만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다시 세운 것.
당시 문화적 여건이 지금보다 현저하게 떨어지고 마땅한 목재를 찾기가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더 이상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복원 위치도 문제였다. 광화문의 원래 위치에서 북쪽으로 11.2m, 동쪽으로 13.5m 떨어진 곳에 복원한 것. 각도 역시 경복궁 중심축을 기준으로 3.75˚틀어진 채였다.
현판도 원본과는 거리가 있었다. 과거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친필을 바탕으로 현판을 작했다.
이처럼 '60년대 판 복원'이라는 시대적 한계는 안고 있었던 광화문은 이제 1865년 고종 중건 때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아름다운 목조 건물로 다시 부활했다.
광화문 복원공사는 2006년 12월 4일 철거를 시작으로 발굴조사, 축조의 순서로 약 4년간 진행됐다.
광화문의 원래 크기는 문헌조사 단계에서 확인됐다. 발굴조사 과정 중 고종 때는 물론이고 조선 초기 태조 때 흔적까지 발견해 위치와 규모를 확정할 수 있었다.
또 대목장(大木匠·중요무형문화제74호) 신응수 선생이 공사의 도편수를 맡았다. 현판은 고종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가 드러난 유리원판이 발견되면서 원모습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한편 이번 복원사업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우리 역사와 전통을 바로세운다는 점에서 뜻깊다.
또 광복절에 맞춰 공개키로 하면서 그 역사적 의미는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사실상 조선시대에 상징적으로 '나라의 문(國門)' 역할을 했다"며 "이번 복원으로 광화문뿐 아니라 광화문 앞마당도 온전한 모습을 되찾게 됐다는 점에서 서울이 역사도시의 성격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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