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전 세계가 파산 도미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뒤늦게 나타난 부작용이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데다 자산가치까지 떨어지다보니 원금은 물론 이자를 갚기도 벅찬 개인들이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미국 법원행정부는 지난 2분기 접수된 파산신청 건수가 42만2061건으로 전분기보다 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분기별 파산신청 건수가 40만건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05년 4분기 이후 4년 반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개인파산을 신청한 건수는 151만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21% 급증했다.
이웃나라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간 가구가 지난해에만 6만 가구에 달한다. 일년새 30%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도 개인회생이나 파산·면책을 진행 중인 사람 중 은행연합회 신용정보 전산망에 등재된 인원만 72만명에 달한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건수만 30만건 이상이다.
파산자 규모는 다소 차이가 난다. 하지만 파산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대동소이하다.
장기 불황에 따른 실업률 상승과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대출 상환 여력이 없어진 것이다.
파산을 하면 기존 채무에 대한 변제 의무가 없어진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앉아서 돈을 떼이는 셈이다.
파산자가 많아지면 결과적으로 사회의 신용도가 하락한다. 성실 변제 의무를 다하지 않고 빚을 안 갚을 생각부터 하는 모럴헤저드(도적적 해이)도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국은 최근 파산 신청 요건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은 지난 2005년 연방도산법을 개정해 평균 이상의 소득자는 파산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독일은 파산을 신청하기에 앞서 당사자 간 채무조정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영국은 파산 결정이 나도 소득 중 일부를 채무 변제에 써야 한다.
우리나라도 파산 사건의 경우 법관의 구두심문을 거치도록 하고 채무자의 재산상황을 면밀히 조사키로 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섰다.
문제는 파산 신청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파산자를 사회적 경쟁에서 도태된 계층으로 보고 이들의 자활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이들의 신용정보는 과거에 채무가 있었던 금융회사만 활용할 수 있다.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를 통해 재기의 꿈을 키울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파산자를 격리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파산 정보는 5년간 활용되며 이 기간 동안은 채무 여부와 관계없이 금융거래가 원천 봉쇄된다.
최근 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면서 햇살론 등 서민금융 상품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도움이 가장 절실한 파산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필연적이다. 경쟁이 계속되는 한 링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이 '패자부활전'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된 다음에야 비로소 금융위기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gggtttppp@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