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국내 수입차업계의 구조적 문제점과 관련이 깊다고 지적했다. 차를 공급하는 상위 업체가 판매대리점(딜러)에게 일방적으로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에, 공급 업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딜러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 가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 보다 상대적으로 판매 가격에 대한 딜러들의 결정권이 높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 경직된 가격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벤츠 '권장소비자가격'의 실체
"벤츠 차량은 국내 어느 판매점을 통해서도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됩니다"
메르세데스-벤츠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서울 삼성 전시장의 한 딜러가 차량 구입을 위해 전시장에 방문한 소비자에게 건넨 말이다.
벤츠의 경우 독일 공장에서 수입된 이후부터 동일한 가격으로 각 딜러사에 전달되기 때문에 가격 조정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실상 벤츠코리아 본사 차원의 원-프라이스 정책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성자동차와 함께 서울 지역을 양분하고 있는 '더클래스 효성'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더클래스 효성 서울 도곡전시장 딜러는 "일부 세일즈 컨설턴트가 자기 몫을 빼서 가격을 깎아주는 사례는 있지만 마진이 높지 않기 때문에 흔치 않은 일"이라고 전했다.
서울ㆍ경기 지역에서 한성자동차와 더클래스 효성의 '복수 딜러제'를 도입했지만 같은 가격으로 판매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없는 셈이다. 복수 딜러제 도입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현재 벤츠코리아는 총 8개의 딜러사를 통해 29개의 전시장 및 서비스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서울ㆍ경기ㆍ충청 지역에 총 11개의 전시장을 가지고 있는 벤츠 최대 딜러사 한성자동차는 벤츠코리아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때문에 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가 가격을 결정할 경우 소규모 딜러사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가격 결정 구조에 힘입어 벤츠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6751억원, 영업이익 258억원을 기록해 BMW코리아에 이어 수입차 업계 2위에 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1~7월 총 8983대, 매달 1200여대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BMW코리아를 제치고 수입차 판매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전체 수입차 판매의 약 18%에 해당하는 규모다.
◆수입차업계의 가격담합 전례
BMW코리아는 지난 2008년 딜러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차량 가격 할인 폭을 합의한 것은 담합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42억5900만원이라는 과중한 처벌을 받았다.
코오롱글로텍ㆍ한독모터스ㆍ도이치모터스ㆍ바바리안모터스 등 7개 주요 BMW 딜러사들은 지난 2004년 판매상간 가격경쟁이 심해져 수익이 악화되자 정기적으로 모여 차종별 할인한도를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공정위는 이들 7개 업체가 이같은 공동행위로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납부하도록 명령했다.
디앤티모터스ㆍ프라임모터ㆍ천우모터스ㆍ삼양물산 등 9개 렉서스 판매딜러들도 같은해 각 딜러 영업이사들이 참석하는 ‘딜러 회의’를 개최하여 가격할인 제한, 거래 조건 설정 등을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벤츠코리아 역시 딜러와 딜러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사와 협의하에 소비자판매가격을 조정하고, 수시로 정하는 소비자판매가격 책정지침을 준수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각 지역별로 영업사원, 마케팅, 딜러 정책 요소에 의해 탄력적으로 운영해 자율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딜러가 어느 정도 가격을 결정하고 파는 방식인데, 한국에서는 공급자가 가격을 일방적으로 정하는 '원프라이스 정책'이 정착돼 있다"며 "이는 매우 후진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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