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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 소통 아이콘' 자처했던 김태호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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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8-2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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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결국 낙마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다섯번째 `40대 총리'에 올라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 등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과 사퇴 압박에 결국 단명으로 끝난 것.

이번 `8.8 개각'에서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었던 김 후보자는 그동안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등 정치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그는 42세 나이에 과감하게 도전한 2004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최연소 도백'으로 당선되며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신선한 사고와 젊은 이미지, 강단있는 지도력 등을 인정받아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고 경남지사 시절 추진한 '남해안 프로젝트'는 국가발전계획으로 확정되는 등 성공한 도정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3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주변의 평가와 달리 올해 초 갑작스럽게 경남지사 불출마 선언을 하며 정치권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이후 김 후보자는 차기 총리와 장관 하마평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렸고, 결국 39년만의 40대 총리라는 상징성을 안고 지난 8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도시적인 이미지와 달리 1962년 경남 거창에서 `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김 후보자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사를 짓더라도 농약병에 적힌 영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큰 자극을 받아 장학생으로 거창농고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대 농업교육과에 진학, 대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부친의 죽마고우였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1992년 옥중에서 14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이강두 전 의원의 선거 캠프에 우연히 합류, 당선에 기여한 것이 인생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사회정책실장을 맡아 일했고, 1998년 경남 도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비롯, `스폰서' 의혹, 선거비용 10억원 대출, 불투명한 금전 거래와 재산관리 문제 등 각종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젊고 신선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특히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만난 시점에 대한 번복으로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청문회 답변보다 이른 시점에 박 전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사퇴 압박이 거세졌다.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김 후보자는 29일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진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부인 신옥임(46)씨와 1남1녀. 특기는 태권도, 취미는 바둑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경남 거창(48) △거창농림고 △서울대 농업교육과 △동 대학원(교육학 박사)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 친선대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경남도의원 △경남 거창군수 △경남도지사(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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