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비웃는 불공정…상습·지능화 막는다

(아주경제 김선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상습적으로 하도급법을 위반해온 업체와 대표의 실명을 인터넷 상에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최근 정부가 '친서민ㆍ친중소기업' 기조를 명확히 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 공정경쟁 당국이 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외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 위반 실명공개 나온 배경은

공정위는 조속한 시일 내에 관련법 개정을 마치고 이르면 내년 2월부터 상습 하도급법 위반 업체를 인터넷에 공개한다는 방침 아래 후속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공정위가 최근 내놓은 '2010년판 공정거래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법 위반으로 인정돼 경고 이상의 조치를 받은 3084건 중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1386건(45.0%)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하도급법 위반으로 부과된 과징금 액수만도 3710억원으로 2008년 2729억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고발조치 건수도 43건으로 2008년의 33건에 비해 늘어나는 등 하도급법 위반이 상습화ㆍ지능화되고 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불공정 하도급거래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강화하고 상생협약 등 자율적 개선 노력을 유도한 결과 하도급거래가 개선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일방적 납품단가 결정, 구두발주 후 위탁 취소, 기술탈취ㆍ유용 등 사례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 기술보호, 구두발주 이행강제

정부는 하도급법 위반 실명 공개와 함께 '하도급계약 추정제' 시행시기도 조율하고 있다.

하도급 계약 추정제는 계약서 없이 제조ㆍ시공 등을 위탁 받은 수급사업자가 요청한 사항을 15일 이내에 위탁사업자가 회신하지 않으면 수급사업자의 통지내용대로 추정되는 제도다.

이는 대기업 등 원청업체가 중소기업 위주로 돼 있는 하도급업체에 서면계약 등 문서로 보장된 발주가 아닌 '구두발주' 관행이 만연한 상태에서 문제 발생시 시행 여부를 담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유에서 나온 제도다.

아울러 공정위는 원사업자가 취득한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해 유용하지 못하도록 강제규정을 두는 방안을 찾고 있다.

수급사업자의 기술을 빼돌리거나 유용할 경우 관련 기술을 이용한 최대 하도급거래 대금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을 벌금으로 내게 하는 초강력 조치다.
그동안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빼가도 별다른 처벌조항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대기업 등 원청업체의 납품단가 인하 및 기술자료 제출 요구에 속수무책이던 중소기업 등 수급사업자들의 권리를 법으로 강제해 지켜주겠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이 화두가 된 지금이 이같은 불공정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 경쟁당국이 '상생협약 강제' 비판론도

중소기업 단체는 이달 말 범정부 차원에서 내놓을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방안'에 이같은 내용이 담겨야 한다며 환영하고 있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진정한 의미에서 상생이 돼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결제, 납품관행이 실질적으로 선진화돼야 상생협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초유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대기업의 공이 컸던 만큼 시장경제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쟁을 촉진해야 할 공정경쟁 당국이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만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KERI) 연구위원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시장을 개척하는 데 기여도가 높았다"면서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의 문제를 분배적인 차원으로 가면 전체 파이를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h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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