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그 뒤로 2년이 흘렀지만 금융위기는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 봄 유럽에서 불거진 재정위기는 '이중침체(더블딥)'라는 공포를 금융시장에 불어넣고 있다.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는 데 각국 정부가 막대한 부채를 동원한 것이 새로운 위기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위기의 단초가 된 미국 주택시장의 붕괴 역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거품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위기의 뇌관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리먼사태 2주년을 맞아 미국과 한국 경제의 변화상과 향후 전망 등을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주>
美 신규주택 판매 실적 추이(연율기준·100만채/출처:블룸버그) |
금융위기는 2007년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이미 예견됐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대거 부실화하자 월가에서는 부실채권을 사들여 파생상품으로 가공했다. 그 사이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는 커질 대로 커졌고 시스템은 결국 마비됐다.
문제는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위험 파생상품 거래는 금융규제가 강화되면서 제한되고 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사태의 불을 댕긴 미국의 양대 모기지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정부의 추가 지원 없이는 자립할 수 없는 처지다. 양사는 2008년 이후 이미 1450억 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집어삼켰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지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산소호흡기'를 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냉각된 주택시장도 해빙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인들의 투자여력이 크게 떨어진 데다 일부 수요도 주택가격의 추가 하락을 기대하며 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7월 신규주택 판매 실적은 27만6000채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역대 최대였던 2005년 7월 139만채에 비하면 무려 80% 이상 감소한 수치다.
주택가격이 떨어지고 거래가 실종되면서 모기지 채권이 부실화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모기지은행가협회(MBA)에 따르면 주택 1~4채를 보유한 모기지 이용자의 연체율은 지난 2분기 9.85%에 달했고 2007년 12월 이후 230만채가 압류됐다.
집값이 대출액을 밑돌자 미국 주택시장에서는 '땡처리'가 급증하는가 하면 주택임대시장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는 의외의 상황도 속출하고 있다.
美 뉴욕증시 다우지수 추이(출처:WSJ) |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주식 대신 채권 투자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거품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크본드를 포함한 채권에 대한 투자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금과 같은 실물자산과 중국과 인도로 대표되는 이머징시장이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10년 만기 美 국채 금리 추이(출처:WSJ) |
특히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제 금값은 최근 2년 동안 64% 뛰었다. 바클레이스크레디트인덱스에 따르면 같은 기간 미국 국채 수익률은 12.4%에 달했고 투자적격등급 미국 회사채와 투자부적격등급 채권인 정크본드의 수익률도 각각 24.4%, 31.1%에 달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선진국에 비해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이머징시장도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펀드리서치업체 EPFR글로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이머징시장 주식형 펀드에 투입된 자금만 830억 달러에 이른다. 이에 힘입어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리먼 몰락 직전인 2008년 9월 12일 이후 최근까지 28% 올랐고 브라질 보베스파지수는 27% 상승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현금 보유액(출처:WSJ) |
금융위기로 생사기로에 몰렸던 미국 기업들은 최근 상당폭의 실적 개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내수기업들은 아직 주춤하지만 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의 경우에는 매출과 수익이 급격히 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다우지수 편입 기업 가운데 신흥시장 매출 비중이 큰 10개 기업의 매출이 내년에 평균 8.3%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이 내년에도 7~9%대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美 실업률 추이(출처:블룸버그) |
JP모건체이스는 최근 낸 투자보고서에서 미국 대기업들이 금융위기 속에 11%까지 높인 현금자산 비중을 7%로 정상화하면 4280억 달러의 자산이 시장에 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잉여자산을 고용창출이나 설비투자가 아닌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에만 쏟아붓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민간부문 고용은 8개월 연속 증가했지만 증가폭은 둔화되고 있다. 8월 실업률은 9.6%로 전월(9.5%)보다 상승했으며 비농업부문 취업자수도 3개월 연속 줄었다.
반면 기업가에서는 향후 경기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회계기업 그랜트손튼이 최근 350명 이상의 최고경영자(CEO)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분의 3분은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침체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향후 6개월 안에 고용을 늘리겠다고 답한 이는 2분기 44%에서 3분기 38%로 줄었다.
◇美 경기둔화 가속화…비관론 확산
미국의 경기둔화 속도가 빨라지자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잇따라 하향 조정되고 있다. 50명의 이코노미스트 패널로 구성된 블루칩이코노믹인디케이터스(BCEI)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2.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 7ㆍ8월 전망치보다 각각 0.6%포인트, 0.2%포인트 낮춰 잡은 것으로 BCEI는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연속 하향 조정했다.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 역시 2.5%로 한 달 전에 비해 0.3%포인트 떨어졌다.
BCEI는 올해 3분기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위축돼 전반적인 성장 속도도 더뎌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지난달 9.6%를 기록한 실업률은 연말까지 유지되다 내년 말 9%로 낮아지고, 주택 부문 투자도 내년 초부터 두자릿수의 증가세를 기록하다 하반기에는 증가율이 30%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경제 전문 채널 CNBC는 13일 미국의 억만장자와 투자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블랙스톤그룹의 바이런 위엔은 매년 여름 억만장자와 주요 투자전문가 50여명과 함께 한 오찬 회동 결과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침체 위험에 직면해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성장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소비자 부채의 대량 축소나 미래 직업을 위한 적절한 기술이 없는 노동인력, 해외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노동비용 같은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고 전했다.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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