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100년 DNA 14·1] “좋은 차는 좋은 철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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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0-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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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년 숙원 이뤄낸 당진 고로제철소

(아주경제 김형욱 기자) “기분 좋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웃었다. 지난 2010년 1월 5일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제1고로 화입식에서 첫 불을 넣은 직후였다.

현대차그룹의 철강사업 진출은 정주영-정몽구 2대째 내려오던 숙원사업이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지난 1978년 제2제철(현 포스코) 사업자에서 뼈아픈 실패를 겪은 것을 포함해 지난 32년 동안 세 번 제철사업 진출을 꾀했으나 그 때마다 번번히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철은 산업의 근간이다. 제철업은 최소 100년 이상 가는 사업이다. 프로젝트를 꼭 성공시켜야 한다.” 1995년 말 그룹 회장에 오른 정몽구가 지난 1997년 경남 하동에 고로제철소 건설을 추진하면서 당시 팀장이던 이계안 전 국회의원에게 한 말이다.

정 회장에 있어 철강사업은 산업의 근간일 뿐 아니라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무려 32년이 흘렀다. 정몽구 회장이 이날 기쁨을 감출 수 없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손뼉도 크게 쳤다. 가까이 간 기자들에게도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다”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왕회장’ 못 이룬 꿈 대신한 정몽구 회장

3전 4기였다. 현대그룹-현대차그룹은 지난 32년 동안 총 세 번의 철강사업 진출을 꾀했으나 그때마다 번번히 실패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첫 시도는 1978년. 박정희 정부는 이 때 제2제철소 건설 계획을 발표한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현대중공업을 내세워 자본금 2억 달러로 현대제철소를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울산에 3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짓고 최종적으로는 1000만t 규모의 종합제철소를 짓겠다는 청사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 노력은 무위로 끝났다. 그 해 10월 박정희 대통령 주재 경제장관회의에서 제2제철소 건설은 포스코가 맡는 것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철강은 역시 박태준”이라며 포스코의 손을 들어줬고 현대는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17년이 흐른 1994년, 현대그룹은 다시 한번 일관제철소 건설을 재추진한다. 부산 가덕도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공급과잉’을 내세운 정부가 허가를 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정부는 그 이듬해 철강 부족 현상으로 현대 측에 “포항제철에 고로 1기를 신설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포브스 한국판 기자 출신이던 이임광 씨는 자신의 저서 ‘정몽구와 현대기아차, 변화를 향한 질주’라는 책을 통해 “당시 이에 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 경쟁자였던 정 명예회장에게 정치보복을 하는 관측도 나돌았다”고 말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1992년 대선 출마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대외 활동도 가장 뜸했던 시기다.

참고로 정 명예회장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던 1997년 이후에는 아들들에 그룹 경영을 나눠 맡기고, 대북사업과 국내외 농경지 개발 사업으로 자신의 마지막 역량을 쏟아부었다.

철강사업을 위한 세 번째 도전은 정몽구 회장이 진두지휘했다. 1995년 말 그룹 경영을 맡게 된 정 회장은 그 이듬해 다시 제철사업을 그룹 수종사업으로 선언한다. 그룹 내에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팀’도 구성했다.

정몽구 회장은 이 팀을 통해 국내 몇 곳의 후보지를 놓고 검토에 들어갔고 경남 하동에 제철소를 짓기로 한다. 경상남도와 투자조인협정까지 맺고 구체적인 계획이 실행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공급과잉’이라는 반대 논리는 여전히 유효했다. 포스코가 “현대가 (고로제철 사업에) 진출할 경우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는 논리를 펼쳤고, 정부는 이를 불허했다. 곧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사업 추진 자체도 어려워졌다.

정 회장은 그 후 자동차 사업에 매진했다. 아울러 고(故) 정몽헌 회장과의 경영권 다툼과 이에 따른 그룹 분리 등 신사업 진출에 신경 쓸 여지도 적었다. 그 때문에 그 후 2004년에 들어서야 지금의 성과를 있게 만들어 준 한보철강 인수를 지시한다.
 
◆“꼭 인수하라”… 한보철강 인수로 꿈 키워

한보철강은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가 난 뒤 7년째 주인 없는 상태를 이어가고 있었다. 3000여 명의 직원 중 500명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포스코-동국제강 컨소시엄, AK캐피탈 등이 인수에 나섰으나 결국 결렬됐다.

정몽구 회장은 2004년 초 한보철강 입찰을 결심하고, 실무팀을 구성한다. INI스틸과 현대하이스코 등 그룹 철강 계열사들이 주축이 됐다. 위기를 느낀 포스코와 동국제강도 입찰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해 결국 9100억원에 한보철강을 인수하게 된다. 같은 가격을 써 낸 포스코보다 할인율이나 근로자 고용 등 더 유리한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 회장은 그 때부터 고로제철 사업 추진을 본격화 한다. 그 해 10월 처음 한보철강을 찾은 정 회장은 “자동차 부품에는 철이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연관산업에 진출해야 한다. 고로 사업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였다. 2006년 10월 고로제철소를 위한 기공식을 가진 현대차그룹은 첫 삽을 뜨기 시작한 이래 3년 반만에 제철소를 완공시켰다.

정 회장은 일관제철소 건설을 철두철미하게 챙겼다. 3년여 건설기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건설 현장을 점검했다. 해외출장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 주말 당진을 찾아 건설 현장을 챙겼다.

지난해 그는 당진 공장을 64회 찾았다. 고로에 불을 넣는 화입식 후 완공식까지 4개월 동안에는 무려 20회를 찾았다. 매주 평균 한 차례 이상 현장을 지킨 것이다.

◆32년 숙원 이뤄낸 당진 고로제철소는

당진 고로제철소는 ‘현대가 숙원사업 성취’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대기아차를 포함,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초의 자원순환형 그룹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부친이 추진했던 사업 중 유일하게 계승한 것도 이 사업 뿐이다.

현대제철이 생산한 쇳물로 현대하이스코가 자동차용 강판을 만들고, 이것으로 현대.기아차가 자동차를 생산한다. 자동차를 폐차해 나온 고철은 다시 현대제철 전기로의 원료로 사용해 철근·강을 생산하고, 이것을 계열 건설사인 현대엠코가 건설자재로 사용하는 순환구조를 완성한다.

이 곳은 올해부터 연간 조강(쇳물)생산능력 400만t 체제를 갖춘다. 하지만 오는 11월 준공 예정된 고로 2호기를 합하면 연간 800만t 규모로 늘어난다. 여기에 기존 전기로의 조강 생산량(1150만t)까지 합치면 현대제철은 연간 1950만t 조강생산량으로 세계 12위권 철강사로 거듭난다.

국내 철강재 수급 시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올 전망이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는 중국·일본 등에서 철강재 2894만t을 수입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연간 800만t 생산을 통해 약 80억 달러 수입대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곳은 미래형으로 설계된 친환경제철소라는 특징도 있다. 세계 최초로 철광석과 석탄 등 원료를 부두에 하역하는 것에서부터 이송-보관-용광로로 반입하기까지 전 과정을 밀폐형 시설로 처리, 오염물질인 비산먼지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 역시 정몽구 회장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준공식에 참석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철강산업 제2의 도약을 선포하는 현장에 와 있는 것”이라며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과감한 투자로 오늘을 만든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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