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진정한 금융인은 사람을 두고 계산하지 않는다." "숲을 헤치고, 계곡을 건너고, 비타길을 오를 때 동료를 생각하라."
지난 2008년 발간된 '신한파워'라는 책을 통해 알려진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신조다.
신한은행은 지난 2일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라 회장이 자신의 장기집권에 도전하는 신 사장을 제압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가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또 피고가 지난 30년간 라 회장과 함께 신한을 키운 신 사장이란 점은 금융권에 충격을 더했다.
더구나 라 회장이 그동안 '뜨거운 인간애'를 가진 최고경영자(CEO)의 이미지를 쌓아왔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과 금융권의 시선은 라 회장에게 차가웠다.
여론은 라 회장이 언행불일치를 저질렀다며 비판했고, 과욕을 부린다고 지적도 쏟아졌다.
최근 신 사장이 라 회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라 회장의 50억원 차명계좌 문제를 제보했다는 설이 돌면서 누구의 선제공격이였느냐는 불분명해졌지만, 아직 라 회장이 먼저 포문을 연 모양새에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현재 여론은 라 회장에게는 비난을, 공격당한 신 사장에게는 동정표를 뿌리고 있다.
문제는 법의 결정 등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라 회장의 대응이 지나치게 극단적이였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여론 속에서 라 회장이 승리해도 '상처뿐인 승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남다른 카리스마로 신한을 키운 라 회장과 관계된 문제라는 점은 신한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번 이사회 과정서 유독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심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라 회장의 이미지와 역할이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들은 라 회장이 조직 내부 문제를 왜 고발 형태로 외부에 알렸는가에 의문을 품는다.
기본적으로 신한사태가 지주사내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이전투구' 양상을 띄고 있지만, 라 회장이 자신의 이미지까지 망쳐가며 굳이 검찰을 끌여들일 이유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지난 19년 동안이나 신한을 이끌며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 지도 모르고, 고발이란 극단적 행동울 취할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라 회장이 본인에게 불리할 싸움을 먼저 시작한 꼴이다.
하지만 금융권 관계자들은 그가 특유의 카리스마로 내부적 해결을 도모했다면 문제가 이렇게 불거지지도, 자신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발을 했더라도 그가 30년 지기 동료를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판단을 기다리는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면 여론의 뭇매는 없었을 거란 분석도 있다.
물론 이 같은 금융권의 목소리에는 이번 신한 사태가 여타 금융회사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섞여있다.
다만 '신한의 신화'를 쓴 라 회장이 자신의 신념처럼 믿고 살던 것을 버릴 정도로, 이 불리한 싸움을 시작했어야 할 이유는 궁금증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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