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브리핑]정의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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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9-1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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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고경영자(CEO)들이 즐겨 읽는다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따르면 '정의(精義)'란 상황과 환경, 처지와 형편, 시대와 컨센서스에 따라 정의(定議)가 다른 유동적인 개념어다. 이 편의 정의가 저 편의 불의가 되고 아무개의 최선이 또 다른 아무개에겐 최악이 되기 다반사인 현실을 반영한다. 아니, 이런 말도 모자란다.

정의란 마치 '물질의 실체가 파동이냐 입자냐' 확실치 않은 것처럼 자기장 안에서 부들부들 떨며 나노그램만큼의 불안정 요소가 주어져도 쉽게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는 외줄 위에 선 광대의 몸짓 같은, 아슬아슬 갈대 같은 것이라고 표현해야 더 맞다.

결국 정의란 그때그때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란 없는 것이나 같다. 물질이 '공(空)'이듯 정의도 허(虛)인 것이다.

유사 이래 정의에 목숨거는 사람들이 있어 왔다. 이 때 정의는 사랑을 포함한 모든 가치의 대명사가 된다.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에 대한 헌사는 대개 '자기 자신보다 조국을 더 사랑한…'이라거나 '가족보다 이웃을 더 사랑한…'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즉 정의란 곧 사랑이며 자기를 희생한 사랑이 곧 정의라는 투다. 사랑은 정의의 명분이며 포장이 된다. 하지만 이 마저 완전한 정의는 아니다. 정의로운 행동에 의한 타인의 생존이나 이익이 자기에겐 희생이 되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환경에서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희생'은 정의도 사랑도 아니다. 더구나 완전이라니 어불성설이다. 쳇바퀴 도는 정의와 사랑에 대한 정의(定議)의 모순이다.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실체가 분명한 인간 내면의 진실인가, 집단 감수성을 휘몰이 하는 헛된 망령인가? 아니면 불안정한 채로 즉흥 변주되는 재즈 선율 같은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고 한갓 꿈일까?

정의가 이럴진대 사랑은 말해 뭐하랴? 사랑이야 말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그 헛됨의 대명사일지 모른다.

사랑이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감정의 편린. 인간의 발정기에 특히 심하게 나타나는 호르몬 작용에 의한 뇌 특정 부위의 착각. 이성(異性)을 꼬셔 목적을 달성하기까지의 '설레발'을 포함한 지난한 공정. 영화나 드라마 제작, 소설이나 시, 유흥이나 엔터테인먼트, 이벤트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산해 내는 인문학적 '구라'일지 모른다.

이 모두 아니라면 사랑이야 말로 지고 지순한 우주적 가치, 존재와 삶의 이유, 역사가 지속되는 원인, 지구촌에 분쟁과 갈등과 환경재앙이 그나마 적은 이유?

사랑에 올인하다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도 유사 이래 있어 왔다. 나름 절실한 감정의 쥐어짬이 있었겠다 싶어 가련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대한민국 극소수 중장년 세대들의 사랑은 참 덧없고 흥없고 실없으며 부실하다 못해 못나 보여 슬프기까지 하다. 공식석상에서 정의나 사랑에 관한 거대담론을 내뱉고 난 뒤 개인들이 끌어 안고 허둥대는 그들의 사랑이란 건 고작 '마지막 섹스의 추억 되살리기'일 뿐이다.

중국으로 동남아로 강남으로 일산으로 이런저런 비즈니스와 접대를 핑계삼아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고추 잠자리의 서툰 날개짓일 뿐이다.

소박했던 시골 소년 소녀 풋사랑의 미련, 그 보상심리적 충동을 그만 잊고 건강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고안해 낼 수는 없을까? 그들의 내면이 이미 되살릴 수 없을 정도로 쉰내로 찌들어 있기만 한 걸까?

정의를 끌어안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사랑이란 게 이렇게 고루하고 비루해서야 정의가 제대로 서겠는가?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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