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연극 '마누래 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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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2-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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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의 진한 강화도 사투리가 인상적이다. 서울에 접한 지역의 주민이 일상에서 그런 억센 사투리를 쓴다는 사실이 의외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언어적으로는 멀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투박한 사투리 속에는 정겨움이 있고 그것을 매개로 해서 등장인물과 관객 사이는 정서적으로 좁아진다. 사투리를 통해 극의 사실성은 강화되고 등장인물들이 품고, 토해내는 사랑과 미움과 한의 감정은 증폭된다.

  
'마누래 꽃동산'의 한 장면. 순자 역의 이현순, 김씨 역의 배상돈 배우.(사진=파파프로덕션 제공)


연극 '마누래 꽃동산'(장윤진 작ㆍ구태환 연출, 강남 동양아트홀)은 죽음을 앞둔 순자 할머니가 과거 서로 좋아했던 김씨와 지금의 남편인 박씨에 대해 갖고 있는 죄의식을 담아낸다.

젊은 시절 순자는 사랑하는 김씨를 따라 나설 수 없었다. 뱀잡이인 그를 부모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순자는 한량이인 줄 알면서도 박씨를 선택했다. 독사에 물릴 뻔 한 순자를 구해내고 대신 뱀에 물려 반신불수가 된 김씨는 동네에 있지 못하고 산 속을 헤매며 떠돈다. 순자는 죄책감 속에 2년 전에는 독이 든 소주를 마시고 사경을 헤매다 겨우 살아난다.

작품에서 죄의식은 '사랑'과 같은 표현이다. 한량 박씨는 젊은 시절 순자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철없는 남편이었다. 그는 한 평생 김씨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순자를 미워했다. 순자와의 사이에서 난 자식마저 미워하고, 술 취해 들어와 "같이 죽자"며 딸의 목을 조르기도 했던 박씨는 독주 소동을 계기로 순자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된다. 젊은 시절의 잘못에 대한 죄의식을 씻어내려 하는 듯 박씨는 '마누래'를 위해 민들레꽃 차를 정성껏 달인다.

"살면서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잖아요. 분에 못 이겨서, 때로는 고의로, 또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평생을 맺혀 살잖아요. 죽을 때가 되어서야 용서도 구하고, 사랑도 확인하고,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구태환 연출은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압축해 설명한다.

'마누래 꽃동산'은 2008년말 대학로 무대 위에 올려졌던 '민들레 바람되어'(박춘근 작.김낙형 연출)를 연상케 한다. 두 작품에서는 모두 민들레가 등장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생과 사가 확연히 구분되지 않은 무대 공간에서 과거의 오해와 아픔을 되뇐다. 무덤 옆의 죽은 사람(순자)이 그리움 속에 눈물짓는 산 사람(박씨)에게 이승세계에서 처럼 말을 하는 것 같은 연출방식도 느낌이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은 후 상대에게 주었던 상처를 씻어내고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면서 관객들의 가슴은 뭉클해진다.

순자 집에 시집와 남편과 사별한 후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며느리 명숙. 남편이 너무 착하고 순해빠져서 남 도와준다며 집안 살림을 거덜내는 바람에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며 친정엄마에게 불평을 털어내는 딸 영순, 순자의 시장 술동무로 순자가 죽은 후 상가에 나타나 불쑥 곗돈 1천만원이 든 봉투를 내미는 창수네. 이런 등장인물들은 순자와 박씨의 주변에서 '사람 살아가는 얘기'를 털어낸다.

일흔살의 순자 역, 남편 박씨 역, 동네친구 최씨 역, 김씨 역을 이현순ㆍ고인배ㆍ이영석ㆍ배상돈 등 연극계에서 연륜을 쌓은 장년층 배우들이 연기해 냄으로써 극의 사실성은 더욱 강화된다. 대사 하나하나가 문학적이고 아름답다.

   
   ◇ 연극 '마누래 꽃동산' = 창작초연작품. 2007 파파프로덕션 창작희곡 공모 대상 수상작. 2010 서울문화재단 공연예술창작활성화 지원사업 선정작.
    작가, 연출 외 제작진은 ▲무대ㆍ소품 이은규 ▲음악 김태근 ▲의상 임예진 ▲분장 최은주 ▲움직임 이준혁.

   출연진은 이현순ㆍ고인배ㆍ이영석ㆍ배상돈ㆍ김성미ㆍ김현ㆍ황세원ㆍ유우재ㆍ허웅
    공연은 서울 강남 동양아트홀에서 10월3일까지. 공연문의는 파파프로덕션 ☎02-747-2090/2070, 강남 동양아트홀 ☎02-515-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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