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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전 종로 토지구획, 지금 번지구획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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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0-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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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대문 안 중심부인 종로 일대 지금의 번지별 구획이 600년 전 조선 왕조가 한양에 도성을 만들 당시 도심의 토지 구획과 거의 같다는 사실이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울문화재연구원(원장 김홍식)은 종로구 청진동 267번지 일원 서울 종로 청진 2-3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부지(7천860평)를 발굴한 결과, "조사지역 대부분에서 확인되는 유적 분포 구획이 현재의 필지(지적) 구획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3일 말했다.

고건축 학자인 김홍식 원장은 "15세기 한양 도성 축조 당시의 조선 초기층까지 발굴한 결과, 건물을 비롯한 각종 유적이 도로와 담장, 배수로 등으로 구획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그런 구획은 지금의 번지별 구획과 기본이 일치한다"고 부연했다.

이는 결국 600년 전 필지가 현재의 번지 구획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김 원장은 말했다.

나아가 조사 결과, 지금의 종로대로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형성된 시전(상점 집중 거리)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건물터가 남동-북서 방향의 사선 형태(부채꼴)로 배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지형에 맞춰 도로와 배수로를 조성하고 이에 접한 면을 따라 건물 조성축을 맞췄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원은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주초를 놓지 않고 그대로 땅에 박은 배기 기둥(일본식 명칭은 굴립주<掘立柱>)에, 벽체 바닥에는 통나무를 놓아 지붕과 상부 벽체에서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하고자 한 특이한 형태의 15세기 건물터가 확인됐다.

김홍식 원장은 "이런 건물을 일본에서는 '토대 건축'이라 하며,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이후에야 등장해 보편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다"면서 "아직 확신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조선의 토대 건축이 혹여 임진왜란을 계기로 일본으로 건너갔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조사에서는 시전 근처에서 일부러 땅에 묻었을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 2점이 한 장소에서 출토됐는가 하면, 청동 주물(鑄物)을 하는 데 사용한 도가니도 확인됐다. 분청자 유물도 다량으로 수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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