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인터넷뉴스팀 기자) 10일 사망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와 외교부 인사들과의 '숨은 인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1997년 2월 12일 주중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해오자 당시 김영삼 정부는 황 전 비서를 무사히 한국으로 데려오는데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황 전 비서의 망명사건 때 중국과 외교협상에 나섰던 정부 인사 증에는 나중에 '최장수' 주중대사를 지내게 되는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포함돼있다.
김 전 장관은 유종하 당시 외무장관의 특보로 일하다 망명사건이 불거진 뒤 이틀째인 1997년 2월1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 파견됐다.
그는 서울대 중문과 출신으로 중국어에 능통하고, 1992년 8월 한·중수교당시 주중공사로 막후교섭에 참여했던 손꼽히는 중국통이었다.
당시 북한은 요원들을 동원해 황 전 비서가 머물던 주중한국총영사관에 진입시키려는 시도를 벌였고, 중국 측에 황 전비서를 돌려보내라고 항의하면서 남북간 대중국 외교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김 전 장관은 베이징에 도착했지만 중국 측은 망명사건을 발표한 한국 정부의 처사 등에 불쾌했던지 김 전 장관을 도착 당일에는 만나주지 않는 등 애를 태우게 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같은 달 20일 사망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장례식 기간까지 겹쳐 일주일 가량 교섭이 중단돼 김 전 장관은 일시 귀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달 넘게 진행된 중국과의 수십차례 물밑협상에서 "황 전 비서의 뜻을 존중하고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한 끝에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당시 김 전 장관이 베이징에서 `중국 옷을 입고 다녔다'는 말까지 돌 정도로 철저한 '비밀행보'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결국 중국도 협상 초기 `남북한간 직접 해결하라'는 입장에서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황 전 비서는 그해 3월 18일 베이징에서 필리핀으로 떠날 수 있었다.
필리핀을 '경유지'로 한 것은 `혈맹'인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중국과 이를 감안한 한국측이 선택한 절충안이었다는게 당시 외교가의 반응이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황 전 비서의 망명과 인연이 깊다.
반 사무총장은 당시 청와대외교안보수석으로 황 전 비서가 무사히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정부내 필요한 조율작업을 총괄했다는게 당시를 잘 아는 소식통들의 11일 전언이다.
그는 특히 그해 3월 30일부터 2박 3일 동안 김영삼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극비리에 필리핀을 방문, 피델 라모스 대통령을 예방하고 황 전 비서의 필리핀 체류기간을 연장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황 전 비서가 한달 넘는 필리핀 체류를 마치고 그해 4월 20일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안도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전화로 도착상황을 수시로 보고하는 역할도 맡았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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