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희준 기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가야누마 탄광'에서 조선인 1000명 가량이 강제 동원된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이를 증명하는 당시 선거인 명부도 발견됐다.
11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장 오병주)는 2005년 9월부터의 조사를 바탕으로 '홋카이도 가야누마 탄광에 강제 동원된 전북출신자의 피해 진상조사' 보고서를 펴냈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에는 특히 일본이 패전 이후 중의원 선거에 필요한 선거인 명부를 작성시 1945년 9월에 성인 남자를 조사한 '선거권하조서(選擧權下調書)' 명부의 조선인 노무동원자 기록이 포함돼 있다.
홋카이도에는 1939년 10월 조선인이 강제동원되기 시작해 태평양전쟁 당시 15만명을 동원했다. 이중 가야누마 탄광은 1939년 10월 130명을 시작으로 매년 꾸준히 징용자를 늘려 1944년에는 825명의 조선인을 징용했으며 전후 상황을 고려할 때 1000여명의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또한 이번에 발견된 '선거권하조서'의 경우 각 시(市),정(町), 촌(村)에 거주하는 만 25세 이상 성인남자(1920년 12월 이전 출생자)를 조사한 기록으로 선거법 개정에 앞서 9월에 공포한 긴급 칙령에 근거해 작성됐다.
만 25세 이상 선거권자만 기록돼 있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대상자는 20세 전후의 연령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강제 동원 전체의 인원을 파악하긴 힘들지만, 정확성이 높아 의미 있는 자료라는 평가다.
내용은 거주 연월일, 본적, 이름, 생년월일, 세대주 등의 기록을 중심으로 총 350명이 등재돼 있으며 '독신자 명부'(253명), 가족을 동반한 '처대자 명부'(66명), '세대주명부'(31명)로 구분됐다.
또한 보고서는 조선인들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일제에 맞서 가야누마 탄광에서 1941년에 식사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과 해방 이후 퇴직금을 요구하는 파업을 했던 기록도 밝히고 있다. 1944년 6월에는 동료가 일본인에게 맞아죽는 탄광 노무자들이 단체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항의는 상당히 큰 결의를 필요로 했을 것이라며 적극적이고 용기있는 당시 징용 조선인들의 의기를 높게 평가했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선거권하조서'에 대해 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조사의 최대 성과라고 밝히고 이번 조사를 계기로 일본 전국에 걸쳐 선거권 명부가 발굴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h9913@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