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희준 기자) 김정일의 스승이자 주체사상을 완성했다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지난 주말 별세했다.
1997년 2월 황씨는 북경주재 한국영사관에 돌연 망명을 신청한 뒤, 지난 13년간 북한 정권의 이중성과 괴리를 설파하며 13년을 보냈다.
북한의 이론적, 정치적 핵심주체였던 황씨의 북에 대한 주장은 다분히 낙관적인 대북 전망만 내놓았던 정권과 사회에 크나큰 경각심을 가져왔고 북한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에 비례해 김정일 정권의 분노도 대단했다. 황씨의 망명 후 그의 가족을 비롯한 2000여명의 관계자들은 모두 숙청됐다. 또한 그에게 배달된 각종 협박편지를 비롯, 최근에까지 암살지령을 받은 공작원 2명이 발각되기도 했다.
이같은 황씨의 고난은 비단 북에서만 오지 않았다. 대북 평화무드를 이어가려던 몇몇 정권에서 황씨의 존재는 불편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때로는 의도적인 침묵을 강요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황씨는 최근까지도 북한 정권의 비도덕성을 비판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이에 북에 남겨둔 가족의 생명과 바꾼 그의 행보는 북의 전술에 기만당하는 한국 정치와 사회에 꾸준히 깊은 경종을 울렸다.
이것이 혈혈단신 북에서 건너와 아쉽게 마감한 그 한 많은 생을 많은 이들이 추도하는 까닭이다. 정부가 고 황장엽씨에게 1급훈장 추서를 결정했다. 또한 국립 현충원 안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훈장추서를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민주당은 뒤늦게 조문을 나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민노당, 진보신당은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 아무런 조문일정도 넣지 않아 선긋기에 나선 모양새다.
하지만 어느 시인의 시에서와 같이 어느 누가 황씨보다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해 끝까지 타올랐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문득 황씨의 모습이 국방부 국감장에서 군사암호 해석의 단서를 제공하며 국정감사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한 모 국회의원의 행동과 겹쳐 생각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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