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지성 기자) 세계 금융역사에 환율전쟁이란 단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전쟁이라지만 자국의 통화가치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깎아내리기 위한 이전투구이다.
금융위기 이후 신국제금융질서가 만들어지기 이전까지의 혼란기에, 수출을 통해 자국 경제성장을 꾀하고 있는 중국과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미국의 속내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갈등은 이미 아시아 신흥국 통화에까지 불똥이 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위기를 빠르게 벗어났다고 해서 찬사를 받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환율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주요 수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110원대를 지지선으로 삼아 오르내리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수출기업들은 이 정도의 환율 수준만 유지되면 영업이익 하락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동안 해외 생산 비중을 꾸준히 높여 환율 리스크를 줄였다"며 "(원달러 환율이) 1000~1100원대만 유지되면 영업이익에는 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출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통화결제수단을 다양화하면서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온 것도 아직까지는 여유를 잃지 않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전자산업은 현지생산 현지판매 글로벌 네트워크가 이미 갖춰져 있다"며 "거래를 현지 통화 위주로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만큼 달러나 유로화 비중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의 환율전쟁 여파로 한국이 저환율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전제 속에 수출기업들이 경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최근 CJ경영연구소 김경원 소장은 "올 연말에는 달러대 원화 환율이 1100원 밑으로 내려가고 장기적으로는 1000원대 초반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몇몇 기업에서는 이미 이 같은 상황변화를 예상하고 있다.
권오철 사장은 11일 일산킨텍스에서 열린 한국전자전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도 반도체 사업의 가장 큰 변수는 환율과 시장수요"라며 "원달러 환율은 1000~1100원 선으로 잡고 경영계획을 짜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환율은 대외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탓이 크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지난 1997년 IMF환란 이후 한국정부는 오랜 시간동안 고환율 기조를 유지해 왔다.
이에 비해 현재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자국 경제 부양을 위해 확대 발행하고, 중국이 이에 맞서 위안화 절상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국외에서는 한국의 원화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 돼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원화가치 상승에 대한 압력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수출의 지속성장을 위해 1100원대의 원달러 환율을 지키려는 정부의 노력이 앞으로는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저환율 시대의 도래가 필연적이라면 이를 대비하기 위해 산업구조 전반에 걸친 체질개선이 시급하다.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체질개선이 해답이다.
또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기왕의 메이저플레이들은 후발 주자들이 추격할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압도적인 시장우위를 점해나가야 한다.
환율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이를 오히려 후발주자들과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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