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진의 육조거리24시]외교부 쇄신은 구호 아닌 의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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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0-2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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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정경진 기자) 외교통상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기자와의 첫 만남에서 "외교부 공무원들은 다른 부처와 다른 특성이 있으니 그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얘길 건넨 적이 있다.

이 공무원은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외교부가 다른 부처와 달리 극소수의 공무원을 채용해 전문성을 쌓기 때문에 '엘리트 조직'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다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대학 재학 당시 고위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지인들 사이에서도 외무고시는 유난히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으로 통했다.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인 만큼 일단 통과하면 '출세'가 보장될 것이란 기대감은 부나방처럼 많은 수험생들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한 유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처럼 어려운 외교 공무원시험조차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많은 이들이 느꼈을 허탈감과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누군가에게는 외교 공무원이 되는 것이 일생의 마지막 목표이자 희망일 수도 있었을테니 말이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딸 특채 파동으로 외교부 조직이 뿌리째 흔들린 지 40여일만에 최근 자체적으로 만든 인사 쇄신안이 발표됐다.

김성환 신임 외교부 장관이 지난 14일 취임후 첫 성과물로 내놓은 쇄신안의 내용은 특채 파동의 원인이 됐던 5급 이상 특채를 행정안전부로 이관하고, 본부 고위직과 재외공관 일부 직위를 외부에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외교부 안에서 직원을 채용하다가 문제가 생겼으니 앞으로는 행안부에 맡겨 투명한 채용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같은 외교부의 인사 쇄신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번 특채 파동의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외교부 특채 파동은 수십년 간 특정 학연과 인맥으로 뭉쳐 '우리끼리' 문화를 형성하면서 곪았던 조직의 전반적인 문제를 외부로 드러내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반성의 정도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외교부가 주관하던 특채제도를 행안부로 넘기는 조처만으로 채용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절차적인 측면에서는 채용의 투명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외교부 특채제도의 특성상 해당부서의 요구가 반영되는 과정에서 특혜 소지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본부 고위직과 재외공관 일부 직위를 외부에 개방키로 한 것도 새로운 대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미 외교부는 일부 본부 고위직을 개방한 상태지만 실제 외부인이 채용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한동안 고위직을 개방형으로 운영하다가 결국 외교부 퇴직자들이 그 자리를 메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당초 예상과 달리 대사직을 외부 개방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시작부터 개혁의지가 후퇴했다는 평가다. 특정 인맥에 의해 주요 재외공관과 부서가 독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서별 순환근무제를 도입키로 한 것 역시 본래 취지와 달리 능력과 무관하게 자리를 나눠먹는 무분별한 평등주의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결국 외교부가 불명예를 씻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란한 구호보다는 적극적인 실천의지다.

김성환 장관이 전직원에게 '외교부 쇄신안' 동참을 호소하는 이메일을 보낸 것도 그 길이 가시밭길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shiwal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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