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 (월드코리안신문 편집국장) | ||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한 번 성하면 반드시 쇠퇴할 날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석 달 열흘 붉은 백일홍도 있지만, 싱싱한 아름다움이 열흘 가는 꽃은 거의 없을뿐더러, 권력도 버틴다고 되는 게 아니니 생떼를 써 역겹게 망가지지 말라는 경책이라 하겠다.
재외동포 참정권 시대를 맞아 다음 달 전 세계 26개 재외공관에서 치러지는 ‘모의 재외선거투표’를 앞둔 재외동포 한인사회가 크게 술렁이는 모습이다.
이번 모의투표는 오는 2012년 4월 총선에서 처음 도입되는 재외국민선거를 준비하기 위함인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모의 재외국민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총 유권자는 당초 예상치 7000명을 훌쩍 넘긴 1만161명에 달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은 재외동포사회의 관심과 더불어 비교적 신청방식이 쉬웠기 때문이다. 국외부재자는 우편선거가 가능하지만 재외 선거인의 경우 공관을 직접 방문해 투표해야 하는 본선거와 달리 모의선거는 우편과 이메일 등을 통해 접수를 받았던 게 주효했다.
특히 재외동포 사회의 참정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과 일본, 중국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지역의 경우 국내 정치권의 ‘배려’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다.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비례대표 1석이 배정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국내 정치에 대한 교민사회의 관심이 증폭되면서 정치권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두 차례 대선 때 50만표 안팎으로 승부가 갈렸던 표차를 고려하면 어림잡아 240만명에 달하는 해외 거주 한인 유권자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표밭임에 틀림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앞 다퉈 LA, 뉴욕, 오사카, 도쿄, 북경, 청도 등 대단위 군락을 이루고 사는 한인 거주지를 방문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모의투표가 실시되는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나라에선 해외 표심을 확보하려는 국내 정당들과 현지 후원조직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추정 유권자가 10만명이 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에는 이미 지난여름부터 국내 주요 정당의 외곽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일부 한인들이 국내 정치권과 연결돼 중국 각 지의 한인조직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물밑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과거 냉전시대의 대립을 경험했던 일본에서는 최대 교민단체인 민단이 국내 주요 정당에 ‘엄정중립’ 방침을 통보하는 등 비교적 차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외국민 투표는 선거법 위반 단속과 조사가 어려워 ‘불·탈법 선거운동의 무법지대’가 될 공산이 크다. 각 국에 주재한 한국대사관들은 사조직을 통한 불법 선거운동 등 선거법 위반 사례를 어떻게 적발할지, 고발이 들어와도 어떻게 조처할 것인지 대책마련에 부심이다. 국외에서 사용된 선거비용을 선거법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더 큰 문제는 한 지역에 2개의 한인단체가 속출하면서 여야 정치인에 대한 줄 대기가 횡행하고, 우애 좋던 이웃이 지연 간, 학연 간 계파까지 형성되는 등 정치 과열현상으로 세계 방방곡곡 교민사회가 환란의 나락으로 빠져들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재외동포 참정권이 자칫 독이 든 성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민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지 않게 하면서도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정부와 중앙선관위의 철저한 사전 대비와 불편부당(不偏不黨)한 대응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아울러 750만 재외 동포들도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임을 되새겨, 덧없는 정치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사익(私益)의 자제와 대승적 진정(鎭靜)을 권고 드린다.
박완규 월드코리안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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