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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의 트렌드 브리핑] 옛길 걷기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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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0-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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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길을 걸었다. 올레 둘레 바우 성곽 등 갖은 이름의 길 걷기 열풍이 한창인데, 옛길은 유독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길이라 사뭇 정취가 달랐다.

풍광만 감상하는 길이 아니라 역사적 흔적을 더듬고 옛 이야기를 상상하는 길이라서다. 경북 울진군 두천리에서 소광리를 거쳐 광회리까지 26.2km. 19세기 보부상들이 소금과 건어물, 콩과 담배, 곡물 등을 지고 봉화, 영주까지 오가던 바로 그 옛 길이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12령이 고스란히 남은 100리 길이었는데, 1960년대 산을 구비 도는 도로가 뚫리면서 숲으로 덮였었다.

이 길의 일부인 10령 길을 최근 경북 남부산림청에서 복원해 놨다.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한 대  울컹덜컹 지나갈 임도 위주의 개발이었으나 큰 선심을 써 계곡 따라 옛길도 더불어 조성했다.

원래는 울진군에 유독 울창한 금강송 군락지를 관광명소화하기 위한 숲길 조성 정책의 명목이었다.

금강송은 일반 소나무에 비해 나이테가 촘촘하고 하늘에 닿듯 쭉쭉 뻗은 맛이 일품인 명품송이다. 예로부터 궁궐이나 큰 절을 짓는 데 쓰인 만큼 왕실과 정부가 관리했다.

금강산 자락부터 울진군에 이르는 태백산 줄기와 낙동정맥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울진군 관할 산야에만 약 8만여 그루가 성성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유일의 대규모 군락지인 셈이다.

이 군락지를 공원으로 조성했는데 여기까지 걷는 길이 '금강송 숲길'이다. 이 길의 시작은 소광2리, 분교를 개조한 금강송 팬션 마당에서다. 이 길 중간에 19세기 초반부터 봉화, 영주를 거쳐 도방대처를 오가던 보부상들의 길이 걸쳐 있다.

금강송 숲길과 보부상 길은 일부가 겹치지만 다른 코스인데, 19세기 보부상 길은 지금 원자력센터가 있는 옛 염전 밭 인근 부구장터나 죽변항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옛날 보부상들은 부구장터에서 두천리(옛 두천원) 주막터까지 와서 하룻밤 묵고 새벽 여명에 나서 소광리를 거쳐 새재 성황사 아래 20여 명 남짓 뒹굴 수 있는 봉놋방 딸린 주막까지 갔다.

거기서 하룻밤. 다음 날 새벽 늛재를 거쳐 광회리(옛 광비원)를 지나 봉화장까지 그렇게 편도로 이틀 반에서 석 삼 일 길이었다.

요즘 체험삼아 걷는 사람들은 두천리 주차장에서 짐을 내려 '내성행상불망비'(옛날 산적떼들로부터 보부상들을 지켜주는 데 앞장섰다는 도반과 접장을 기리는 철비석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보부상 관련 비)가 있는 계곡에서 산길로 접어 든다.

여기서 소광2리 금강송 펜션까지 13.5km. 꼬박 6시간 거리다. 보부상 걸음과 다른 현대인들의 걸음으로는 여기까지가 하루 코스다. 다음 날 소광리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2개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 하나가 앞서 말한 금강송 숲길이요 다른 하나는 아직 일반에 개방되지 않은 광회리까지 가는 코스, 큰 늛재와 작은 늛재를 넘어 가는 원시림 울창한 옛 길이다.

금강송 숲길과 보부상 길은 옛 말로 복찻다리(제법 큰 길을 가로지르는 개울가에 놓인 다리)가 있는 대왕천에서 갈린다. 숲 길은 위, 보부상 길은 아래로 간다. 3박 4일 동안 이 두 길을 다 걸어보는 횡재를 누렸다. 그리고 이 길들에 홀딱 반해 버렸다.

특히 12.7km에 이르는 이틀 째 코스. 소광리에서 광회리까지 넓재 고개를 넘는 길은 산양들이 노닐고 부엽토 향기가 콧속에 감기며 멧돼지도 출몰하는 그야말로 옛 길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보부상들의 옛 이야기가 소록소록 피어오르는 듯한 기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울진에서 봉화까지 유일한 통로였으며 현령 공덕비가 길가에 버젓이 서 있는 번성한 도로였다는 이 길. 객주의 작가 김주영 선생의 열정과 경북도청, 울진군청의 뜻있는 공무원들의 노력이 합해지고 문화예술인들의 관심이 함께하여 개척하고 있는 이 길에서 우리 일행은 그 숲의 정령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얼이 빠졌다.

걸으면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생은 이야기의 일부라는 생각에 흠씬 젖어 들었다. 그리고 서울 한 복판에서 미친듯이 외치고 싶어졌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인생은 이야기의 일부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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