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WTO 협정은 약자에게만 적용되는 철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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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0-2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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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광효 기자) 정부는 그 동안 ‘영세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SSM 규제가 WTO 협정에 위배되고 한·EU FTA 체결에 장애요인이 된다”며 반대해 왔다.

SSM을 규제하는 것이 과연 WTO 협정에 위배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에 공개된 한·EU FTA 협정문을 살펴보면 정부가 WTO 협정을 약자에게만 적용되는 철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EU FTA 협정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백화점이 벨기에, 불가리아, 덴마크, 프랑스, 이탈리아, 몰타, 포르투칼에 진출할 때에는 경제적 수요 심사를 받아야 한다.

경제적 수요 심사의 주요 심사기준은 △기존 매장의 수와 이에 대한 영향 △인구밀도 △지리적 산포 △교통조건에 대한 영향 △새로운 고용 창출이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나라 백화점의 진출로 인해 자국의 상인들이 피해를 볼 경우 우리나라 백화점이 진출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상 백화점 입점 허가제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EU 회원국 소속 대형 유통업체들의 국내 골목상권 진출에 대해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만약 그 동안 정부가 그토록 역설한 논리대로라면 한·EU FTA 협상장에서 “이 조항은 WTO 협정 위반”이라며 이 조항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 영세상인 보호를 위한 SSM 규제에 대해선 WTO 협정 위반이라며 반대하면서 외국의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우리나라 백화점이 외국에 진출할 때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 조항은 수용했다.

정부는 우리나라 영세상인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외국 상인들을 보호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SSM 규제에 대해 “WTO 협정 위반”이라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영세상인 보호를 위해 대형 유통업체들을 규제한 것이 WTO에 제소된 사례가 있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영세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leekhy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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