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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별이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1차 행사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일 금강산 면회소 일대는 말 그대로 울음바다였다.
떠나는 이, 보내는 이,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 누구나 할 것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져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북측 최고령 상봉신청자인 리종렬씨(90)는 북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배웅하는 남측 아들 민관씨(61)를 차마 쳐다보지 못한 채 눈물만 글썽였다.
60년 전 갓난아기 때 이름만 지어주고 전쟁터로 떠나면서 헤어졌던 아들을 환갑이 돼서야 만났지만, 이제 헤어지면 살아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슬픔을 감내하기 어려웠으리라.
불과 몇 시간 거리에 혈육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강제로 격리된 현실이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을 만들고 있다.
생사를 가르는 슬픔이 크다지만, 살아서도 만나지 못하는 생이별의 고통 역시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이산가족들에게 꿈에서도 그리던 혈육을 단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은 평생의 소원이지만, 짧은 만남 이후 감내해야 할 또다른 긴 이별의 슬픔은 너무도 잔인한 고통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때문에 1년에 한 번 성사될까 말까하는 이산가족 상봉의 횟수를 늘리고 정례화해야 할 필요성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산상봉이 남북의 정치적인 상황에 의해 좌지우지되다 보니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이산가족들의 애간장이 끊어지고 타들어갈 지경이다.
작년 9월 이후 13개월만에 이뤄진 이번 상봉에서 남북을 합해 겨우 200명도 안 되는 이들이 혈육을 만났을 뿐이다.
현재 남측 이산상봉 신청자가 8만3000여명에 달하지만, 매년 3000명 이상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더욱이 상봉 신청자의 40%가 80세가 넘는 고령이어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상봉으로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이산가족들의 소원이 도저히 이뤄질 수 없다는 얘기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세월 동안 피붙이를 만나지 못했던 많은 이산가족들에게 남북의 정치·경제·군사적 대결은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허한 얘기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그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오붓한 식사를 하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같이 한 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간절함만 있을 뿐이다.
그처럼 소박한 이산가족들의 소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남북의 위정자들이다. 지금에 와서 현재의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따진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이산의 고통은 줄지 않고 있고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쪽은 아무데도 없다.
남북 정권은 이제라도 지난 60년 동안 이산가족들에게 자행한 잔인한 만행을 사과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 첫걸음은 우선 상봉을 정례화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조건부 타협도 용납될 수 없다.
정치적인 타협을 통해 가끔씩 선물처럼 던져주는 이산가족 상봉은 또다른 만행에 불과하다.
남북 위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산가족 상봉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shiwal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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