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로 차기 연방 하원의장에 내정된 존 베이너(60) 의원은 아이비리그 명문대학 출신과 변호사들이 즐비한 워싱턴 정치무대에서 내세울만한 배경이 없는 인물로 꼽힌다.
오하이오주(州) 남쪽 끝 자락의 레딩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12남매 가운데 둘째로 자란 베이너는 일과 후 집에 돌아가는 것이 마치 고아원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고 술회했다.
그의 아버지는 삼촌과 함께 동네의 조그만 술집을 운영하면서 여기서 나온 수입 가운데 절반을 삼촌과 쪼개 집으로 가져와 12자녀를 키웠다. 베이너는 "어릴 적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려 무진 노력했다"고 말했다.
벽촌의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 미국에서 선출직 가운데 정.부통령에 이어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연방 하원의장 자리에 오르게 됨으로써 베이너는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다. 하원의장은 정.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2006년부터 4년간 하원의장직을 맡은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가 명품 의상에 얼굴의 잔주름을 없애는 보톡스 시술로 요약되는 캘리포니아 부유층의 상징적 인물이라면, 베이너는 근로자 계층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을 신봉하는 그의 부모는 민주당 지지자였고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민주당 성향이었지만 커서 일자리를 갖게 된 후 급료명세서를 보고서는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게 된다.
베이너의 형인 봅 베이너는 쥐꼬리만 한 급료에서 세금이 뭉텅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서는 점점 더 공화당원이 돼 갔다고 회고했다. 베이너의 여동생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술집을 그대로 물려받아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신시내티 소재 세이비어 대학을 나온 베이너는 조그만 플라스틱제품 판매회사인 뉴사이트세일즈에서 판매사원으로 출발, 승진을 거듭하면서 이 회사의 사장자리에까지 오른다. 이 회사의 소유주는 사망하면서 회사의 소유권과 자신의 골프클럽까지 베이너에게 물려줬다.
기업인으로 입지를 다진 그는 1985년 오하이오 주 하원의원을 시작으로 정계에 진출, 199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이번 중간선거까지 포함해 11차례 재선에 성공했다.
90년 하원에 진출하면서 초선의원 6명과 함께 하원 의사당내 우체국과 은행의 비리를 파헤친 `갱 오브 세븐(Gang of Seven)'으로 불리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기업을 경영한 경력 탓에 하원에서의 투표 기록을 살펴보면 친(親)기업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2008년 10월 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입안된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건강보험 개혁법에는 끝까지 반대했다.
검붉은 얼굴빛에 시골풍의 친밀한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이며, 때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고성의 연설을 토해내는 감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초 하원에서 건보개혁법안이 통과되기 직전 발언권을 얻어 고성을 질러가며 법안 통과의 부당성을 주장할 때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까지 가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2일밤 공화당의 하원 다수당 탈환이 확정되자 TV생중계 연설로 승리를 선언할 때도 젊은 시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온갖 역경을 견뎌냈던 자신의 인생역정이 생각난 듯 2분여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일 정도로 감상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이번 선거전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심판으로 몰고 가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과 실업사태, 효과없는 경기부양책 등을 실적으로 부각시키는 전략을 펼쳐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특히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비롯한 오바마 경제팀의 핵심 멤버들의 경질을 요구, 백악관과 날카롭게 대립했으며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베이너의 지역구인 오하이오를 직접 수차례나 찾아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펼쳤지만 그의 기세를 꺾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베이너는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당이 되면 건보개혁법과 금융규제법 등 기업에 부담을 주는 조치들을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철폐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향후 공화당 주도의 하원과 백악관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는 건보개혁법의 폐기가 상원의 반대로 어렵게 된다면 건보개혁과 관련된 주요 사업과 항목에 예산집행을 차단함으로써 법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거국면 이전에는 하원내에서 초당적인 합의를 이뤄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나지 않은 인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콜롬비아, 파나마 등과 체결한 FTA을 즉각 비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그의 리더십 아래서 하원에서 한.미FTA 이행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한층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골프와 파티를 좋아하고 와인을 즐기며 줄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3년 결혼한 아내 데비와의 사이에 두딸 린지와 트리셔가 있다. 연합/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