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아시아인 5명과 미국인 한명이 표류한다. 조난자들중 아시아인은 사냥, 미국인은 식사분배를 맡아 살아가기로 한다. 아시아인들은 미국인이 놀고 먹는데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아시아인 들의 불만이 커지자 미국인은 어음을 건네주며 “모아두면 잘 살게 될 것”이라고 현혹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어음쪼가리는 그 진가를 잃어간다. 피터 시프의 ‘크래쉬 프루프(Crash Proof 달러대붕괴)’에 나오는 ‘무인도 고사’다. 이 책은 2008년 중국에서 쏭홍빙의 화폐전쟁과 함께 공전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이 책이 결과적으로 ‘위안화 국제화의 비상’을 예고한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 책이 결과적으로 ‘위안화 국제화의 비상’을 예고한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제통화를 향한 힘찬 비상
달러 대붕괴에서 처럼 최근 ‘주식회사 미국’의 ‘어음’인 달러가치가 형편없이 추락하는 것에 반해 ‘중화인민공화국(주)’의 보증수표인 ‘런민비(人民幣·RMB 위안화)’는 중국 굴기를 견인하며 강세통화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2005년 7월 환율개혁 당시 달러당 8위안대였던 위안화는 2008년 3월무렵 6위안대에 진입했다. 조만간 달러당 5위안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위안화 강세는 중국의 국가 번영과 미국의 경제침체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고와 미국의 저금리 정책에 따른 양측 금리차도 또하나의 요인이다.
하지만 위안화는 20년 전만해도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사회적으로 배급에 익숙하다보니 화폐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외부세계도 여행때 런민비 태환권이나 만져볼뿐 중국의 법정화폐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런 위안화가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탈바꿈했다.
“옛날에는 비단과 도자기가 중국의 상징이었다. 20세기엔 텐안먼(天安門)과 완리창청(萬里長城)이 중국을 대표했고, 21세기엔 중국 하면 위안화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중국 학자 자오하이쥔(趙海均) 교수는 저서 ‘중국 경제전략’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옛날에는 비단과 도자기가 중국의 상징이었다. 20세기엔 텐안먼(天安門)과 완리창청(萬里長城)이 중국을 대표했고, 21세기엔 중국 하면 위안화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중국 학자 자오하이쥔(趙海均) 교수는 저서 ‘중국 경제전략’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강세행진속에 위안화의 국제 지위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위안화는 현재 홍콩과 베트남 태국 북한 몽골 러시아 등지에서 결재 및 저축 수단으로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완전 태환화가 되려면 외환및 금융체제 개혁 등 아직 난제가 많지만 위안화의 국제화 행보는 갈수록 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공산당의 화폐 ‘런민비’의 어제와 오늘
위안화는 연륜에 있어 달러에 비교가 안되는 신생 통화다. 하지만 이제 서른을 갓넘긴 중국 시장경제에 비하면 역사가 배나 빠르다. 공산당은 지난 1948년 12월 허베이(河北)성 스쟈좡(石家庄)에서 인민은행을 발족, 통일화폐 런민비를 처음 발행했다. 세계 화폐 소장가들이 이 첫 위안화를 수집하려고 난리다. 당시 위안화는 1만만 위안및 5000 위안 등 고액권으로 발행됐다. 이후 1955년 통화개혁으로 30여년간 10위안짜리가 고액권으로 통용됐다. 1987년에는100위안권 런민비가 처음 발행됐고, 1999년 5번째 신권발행으로 문양이 현재의 모습이 됐다.
일부 학자들은 중국돈 위안화의 기원을 3000여년전 고왕조시대로 잡기도 한다. 텐안먼(天安門) 광장 서편의 ‘첸비(錢幣 화폐)’ 박물관에 가면 상(商)나라 때부터 현재의 위안화 까지 중국 돈의 장구한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원시시대 조개돈과 청동 괘돈, BC 770년 뾰족삽 모양의 청동 ‘푸비(布幣)’, 전국시대의 ‘다오비(刀幣)’와 황토 주조틀이 전시돼 있다.
또 친(秦)왕조의 시황제가 천하통일후 만든 ‘팡쿵위안(方孔圓· 동그랗고 중앙이 네모로 페인 모양)’형의 동전도 전시돼 있다. 당시 돈은 ‘반량첸(半兩錢)’이라 해서 무게로 값을 매겼으며 위안화 같은 통일 화폐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한나라땐 화폐사용 증가로 중앙은행 같은 기구가 생겨났다. 이 시기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이 이뤄졌고 서역국의 ‘외환’ 보유도 이뤄졌다. 당송때엔 지폐가 등장하고 청시대엔 어음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최헌규 기자 chk@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또 친(秦)왕조의 시황제가 천하통일후 만든 ‘팡쿵위안(方孔圓· 동그랗고 중앙이 네모로 페인 모양)’형의 동전도 전시돼 있다. 당시 돈은 ‘반량첸(半兩錢)’이라 해서 무게로 값을 매겼으며 위안화 같은 통일 화폐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한나라땐 화폐사용 증가로 중앙은행 같은 기구가 생겨났다. 이 시기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이 이뤄졌고 서역국의 ‘외환’ 보유도 이뤄졌다. 당송때엔 지폐가 등장하고 청시대엔 어음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최헌규 기자 chk@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