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금융업계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체질개선 속도가 빠르다 . 이번 금융위기가 리먼브라더스 파산에서 촉발됐다는 점을 감안하 면, 이들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국내 금융투자회사들도 '글로벌IB'를 지향하기 위해 망망대해를 항해중이다. 후발주자로서 글로벌IB를 지향하는 데는 한계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당한 노젓기와, 앞서 암초에 침몰한 글로벌IB들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는다면 보다 빠른 속도로 그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기대한다.
이들이 현재 어느 방향으로 돛을 틀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IB 트렌드는 겸업화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IB들의 가장 큰 변화는 기업 인수·합병(M&A) 를 통해 사업을 다각화 시켰다는 점이다. 이른바 CIB(상업+투자은행)화다.
글로벌투자은행(IB)의 대명사인 골드만삭스가 금융위기 이후 은행지주사 형태로 거듭났다. 수신기반을 확보해 신뢰를 높이라는 시장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월가의 대표적 상업은행(CB)로 출발한 JP모건체이스는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와 워싱턴뮤추얼 등을 인수하면서 두 영역간 시너지를 더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역시 메릴린치를 인수해 전 분야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최대 은행으로 부상했다. 노무라 역시 리먼브라더스의 아시아태평양·유럽 두 법인을 인수하면서 투자은행, 주식 영업 사업 역량을 확대했다.
이들 글로벌IB들은 상업은행(은행업)과 투자은행(증권업)을 강화해 기업 밀착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대출을 하면서 해당 기업을 상대로 M&A 서비스를 하거나 기업공개(IPO)업무를 맡는 등 패키지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IB들은 높은 수익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본격적으로 금융업종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강종만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업과 증권업의 독자적인 발전모형보다 두 업계의 상호보완성을 제고해 시장 친화적인 금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은행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금융회사의 투자은행업무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나라 금융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글로벌IB들의 겸업화 움직임과 달리, 상업은행(은행업)과 투자은행(증권업)의 겸업을 제한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가 과도한 투기로 자산시장에 거품이 형성되다 한번에 폭발한 결과물인 만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겸업화·규제완화…글로벌IB에 필수
그러나 국내를 비롯한 이머징국가의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위험관리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나 은행의 사업영역 조정 대신 자본요건 강화, 손실 완충장치 마련 등으로 리스크 관리 수위를 높이는 등의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다. 이제 막 글로벌IB 형태로 변화를 시작한 국내 금융사들이 기존 글로벌IB과 규모, 경쟁력, 건전성 등 측면에서 어깨를 견주기 위해서는 겸업화가 필수적이다.
황건호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최근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G20 의장국으로 새로운 글로벌 금융규제체계 확립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하지만, 한국 금융환경 및 역사를 고려한 규제체계가 필요하다"며 "금융업권별 특수성을 고려한 유연하고 탄력적인 자율규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수익구조의 쏠림현상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익구조 측면에서 IB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균형잡힌 수익구조를 유지하면서 IB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등 미국 IB들의 경우도 투자은행과 자산관리(WM) 부문의 수익비중(2009년 기준)이 각각 11%, 9%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송 연구위원은 "금융위기 이후 예금수취기관의 과도한 위험추구를 억제하는 글로벌 금융개혁으로 증권사들이 자기매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며 "IB의 발행증권을 수요하는 거래상대방으로서의 자산관리의 중요성은 커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사들의 과도한 리스크 관리성향 자제도 요구됐다.
김진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는 "증권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경영개선권고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는 리스크 회피 경영의 반증이며,감내하는 리스크 대비 과도한 자본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외부인력으로 '융화'과정 필요
글로벌 IB로 뿌리내리기 위한 주요 조건중 하나는 전문인력 확보다.
현재 국내 IB전문인력은 공식적인 집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글로벌 IB들의 주력사업 중 하나인 자기자본투자(PI) 인력에 한해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 이전 전체 PI분야 인력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인 8000여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아시아지역 PI담당자만 약 6%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국내 10대 증권사 PI팀 인력은 50여명 안팎에 불과했다.
해외에 앞서 진출한 금융투자회사 실무진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다. IB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칠래도 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는 IB전문가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인재양성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현지전문가 채용에도 적극 나서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한 금융투자업계 IB부문 팀장은 "높은 연봉을 감수하고 해외 IB전문인력을 채용해도 일년을 못버티고 나가기 일수다"면서 "글로벌 IB대비 열악한 근무환경과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국내 전문인력을 집중 양성함과 동시에, 외부 채용인력이 내부조직에 스며들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김종선 대우증권 홍콩현지법인 상무는 "글로벌 IB로 경쟁력을 키우려면 내부 인재가 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나, 국내 인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 시점에선 외부인력을 위주로 채용하되 일할 수 있는 영업인프라를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이와 함께 국내 젊은 인력을 해외 현지에 파견해 외부인력과 융화되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진영 기자 agni2012@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