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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의 트렌드 브리핑] 예술에 투자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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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1-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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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배부른 호사인가? 아니다. 적어도 진심으로 예술적 독보성을 열망하는 작가에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노란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며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유명해진 화가 한생곤은 최고 학력을 갖춘 천재급 예술가지만 부자가 아니다.

그는 경남 사천, 태어난 고향 작업실에서 아궁이의 재나 마당의 흙 등 그 지역에서 난 재료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부러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자기만의 독보적 예술성을 추구한다.

그의 독서량은 끊임 없이 쏟아내는 철학적 질문과 진지한 해석들에서 엿보인다. 말머리가 늘 "(어떤 어떤) 책에 보니까 이런 말이 있던데, 그 말은…" 하는 식이다.

오랜만에 술자리에서 만나 가벼운 농짓거리나 하며 입으로나마 객고나 풀려던 다른 화가나 작가들이 "매사 너무 진지하지마…" 하며 골리다가도 어느새 그의 입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는 술자리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진지한 표정을 풀지 않는다.

꽁지머리에 깊은 눈빛과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 게다가 인생과 사물에 대한 탁월한 성찰적 해석력까지 그의 그림은 가치 없을 수가 없는데 그는 부자가 아니다. 그의 예술은 배부른 호사가 아니다. 예술가의 천재성과 치열함이 표현된 그 무엇이다.

치열한 그림은 이 시대 젊고 독보적인 현대풍 동양화가로 평가되는 박병춘도 그린다. 최근 인사동 사비나 미술관에 전시된 한쪽 벽면에 먹으로 산을 그리고 흰 천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를 꾸민 설치 작품은 꼬박 열흘 동안 밤낮이 걸렸다고 한다. 그가 먹과 붓으로 그린 거대한 바위벽과 산, 들판 그림은 유독 치열한 작업 과정이 느껴진다.

핏발 선 눈으로 몇 날 밤을 새우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린 일이 많았다고 한다. 예술가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선 '반드시 고가에 팔린다는 보장도 없는 터에 그렇게 커다란 그림을 혼신을 다해 그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에게도 예술은 호사는커녕 고행인 셈이다.

부와 풍요의 상징인 돼지 그림을 많이 그려 유명한 서양화가 최석운도 즐겁고 행복한 표정 뒤에 다시 되돌아 가고 싶지 않은 과거 간난신고의 기억이 어려 있다.

그는 늘 떠들썩 웃으며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진한 농담을 건네 판을 주도하는 '쌈마이' 포스를 풍기지만 돼지 그림 속에 녹아 있는 풍자와 해학은 세계에 내놓아 손색없는 일류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소설가 성석제는 '(나의 패션을 탓하는) 최석운은 그의 그림 속 돼지를 닮았다'고 썼다. 자기 그림 속 돼지가 한    톨도 자기를 닮은 구석이 없다고 주장하는 최석운은 미술 동네가 심각함으로 위장된 권위나 객기, 그리고 현란한 재주로 미술의 고귀함과 고매함을 설파하는 것을 안타까와 하며 "미술이 위대하다거나 대단한 무엇이어야 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을 보면 즐겁고 행복한 기분에 빠지고 부자가 될 것 같은 기운에 가슴이 푸근해 온다.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TV 코미디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보다 더 허파를 간질인다는 사실을 경기도 양평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처음 깨달았다.

이렇듯 남을 재밌게 하는 그의 그림도 그에겐 결코 호사가 아니다. 그림 안에서 자기를 성찰하고 타인들과 소통하며 세상에 좋은 기운을 퍼뜨리자는 그의 올 곧은 인생전략을 실천하는 운동(movement)이다.

그림을 산다는 것은 예술가의 정신, 그의 혼을 공유하며 탁월한 직관에 공감의 박수를 보내는 행위이다. 경매, 투자, 재테크 운운하며 어떻게든 싸게 샀다 비싸게 팔아 보려는 아마추어 투자가들이 아직 많지만 작가들의 치열한 고행에 값을 매기는 짓은 좀 낯 부끄럽기도 하다.

깊어지는 가을 화랑가가 문전성시다. 그림을 감상하고 도록을 읽으며 예술가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 느낌이 오면 값을 따지지 말고 한 두 점 사도 좋다. 새 차는 사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지만 그림 값은 세월이 갈수록 천정부지일테니까.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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