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러시아 수교 2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러시아마린스키발레단. 왼쪽부터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상 백성현, 유리 파테예프 발레감독, 울리아나 로파트키나,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 유지연, 다닐 코르순체프, 예프게니 이반쉔코 |
한·러 수교 2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이 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과 더불어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꼽히며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근거지다.
마린스키의 유리 파테예프 감독은 발레단을 향한 애정과 자부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파테예프 감독은 “마린스키 발레단은 러시아 발레의 역사와 함께 한다.클래식 발레의 진수로 널리 알려진 ‘지젤’ 역시 우리 발레단 버전”이라며 “앞으로 역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레 갈라’ 공연 세 작품을 황실 발레의 전통을 잇는 ‘파키타’ 중 ‘그랑파’, 세상에서 가장 시적인 발레로 꼽히는 조지발란신의 ‘스코틀랜드 심포니’, 세 커플이 등장해 관객에게 놀라움을 안겨줄 ‘인 더 나잇’을 선택한 것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감독의 의중이 엿보인다. 파테예프 감독은 위의 세 작품을 “가장 마린스키다운 발레작품”이라며 “지젤과 백조의 호수의 클래식한 마린스키와는 또 다른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갈라 공연에서는 마린스키 유일의 외국인 단원이자 한국인 단원인 발레리나 유지연 씨가 ‘빈사의 백조’로 무대에 오른다. 한국관객을 위한 일종의 ‘선물’이다. 유지연 씨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산실(産室)이라 불리는 러시아 바가노바 아카데미를 전 과목 만점수석으로 졸업했다.
빈사의 백조는 한 마리 백조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서히 날개와 고개를 떨구며 죽어가는 과정을 아무런 무대장치 없이 오로지 발레리나의 연기만으로 승부한다. 그동안 전설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이후 마야 플리세츠카야, 갈리나 울라노바 등 최고의 프리마돈나만 도전해 온 작품이다. 유지연 씨는 “약 4분 정도 되는 그다지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뒤로하고 처절히 죽어가는 백조의 모습을 연기하려면 고강도 테크닉과 표현력이 필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녀는 “은퇴는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며 “특별히 정한 것은 없지만 은퇴 후 한국의 발레 인재 양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견에는 마린스키 최고의 발레리나도 참석했다. ‘백조의 호수(Swan Lake)’의 주인공 울리아나 로파트키나와 ‘인 더 나잇(In the Night)’에서 환상적인 공연을 펼칠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이다. 로파트키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는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과 손동작이나 상체 동작 등에서 차이가 난다”라며 “마린스키는 포즈를 중시하고, 포즈의 선과 감정을 특히 더 중시한다”라고 설명했다. 로파트 키나는 이전에도 한국에서 공연을 펼친 적 있다.
로파트키나와 달리 한국 공연이 처음인 콘타우로바는 얼굴에 설레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녀는 “내일 공연이 끝나고 얼마나 뜨거운 반응이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단원 모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라며 “물론 공연의 성과는 관객이 보고 판단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갈라 공연 ‘스코틀랜드 심포니’의 솔로이스트 예프게니 이반첸코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우 관객이 발레를 접할 기회가 많아 많은 내용을 알고 온다. 하지만 발레를 잘 모르고 온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관객은 더 많은 관심과 호응을 보낸다”라며 한국관객의 따뜻한 반응에 고마움을 표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발레리나로서의 삶과 한국 발레에 관한 이야기도 오갔다. 출산 후 무대로 다시 돌아온 울리아나 로파트키나는 “한국 뿐만아니라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겪은 발레리나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무대 위의 경험이 많다면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다. 중요한 건 인내심이고 이를 극복하는 건 발레리나 개인의 능력이다. 마린스키 내에는 나같은 사람이 많다. 제일 큰 문제는 이미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라고 밝혔다.
91년 러시아로 가 20년 가까이 러시아에서 생활한 유지연 씨는 한국발레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흡족해했다. 유 씨는 “신체가 서구형 체형으로 점점 변하고 있고, 무엇보다 기초교육이 강화되고 있다”라며 “클래식 발레는 기초가 가장 중요한데 우리나라도 마린스키발레단 부속 발레학교인 바가노바 학교처럼 체계적으로 기초교육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또 “꿈을 갖고 살라”며 발레 꿈나무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마린스키 발레단의 이번 공연은 91년 이후 다섯 번째 내한공연이며 오는 9일부터 14일까지 고양아람누리에서 ‘지젤’ ‘백조의호수’ ‘발레갈라’ 공연의 무대를 감상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www.artgy.or.kr
오민나 기자 omn0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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