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중국의 정상이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우호를 다짐하는 잔을 기울였지만 회동을 전후해 양측 외교 당국자들 사이에 팽팽한 '양귀비꽃' 신경전이 벌어졌다.
다름 아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비롯한 영국 대표단의 가슴에 일제히 달린 큼지막한 배지 때문이다.
조화로 된 이 배지는 바로 '포피(poppy)'라는 이름의 양귀비 꽃.
'포피'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한 지방에서 격전을 벌이던 중 피어났던 야생 양귀비 꽃을 보고 지은 시에서 유래돼 전몰 장병들의 상징이 됐다.
지금도 영국, 호주 등 영연방 국가 국민들은 독일이 항복을 선언했던 11월 11일(현충일)을 전후해 '포피' 배지를 사서 달며 선열들의 죽음을 기린다. 그 돈은 참전 군인들을 돕는 기금으로 쓰인다.
정치인, 경제인은 물론 평범한 직장인,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누구나 기꺼이 1~2파운드를 내고 이 배지를 구입해 거의 11월 내내 달고 다닌다.
중국 측은 이번 방중을 앞두고 외교 경로를 통해 이 배지를 달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
그 이유는 양국 간 불편한 역사의 한 장이었던 아편전쟁 때문이다.
아편전쟁은 1840년부터 1842년 사이에 아편 문제를 둘러싸고 청나라와 영국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청나라가 패해 난징조약이 체결됐다.
중국의 어린이들은 아편전쟁에 대해 근래 150년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교육을 받는다. 마약인 아편의 무역을 자유화하라고 요구하며 영국이 무너져가던 청나라에 선전포고한 이 전쟁은 인류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전쟁 중 하나로 꼽힌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10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측이 아편전쟁을 언급하며 포피 배지를 가슴에 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면서 "중국 측에 포피는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이고 늘 달고 다닌다는 말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의 '현금'을 쫓아 중국을 찾았지만 영국 대표단의 가슴에 달린 포피는 중국에 대한 작은 반항을 상징한다고 이 신문은 풀이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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