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7개월만에 풀려난 원유운반선 삼호드림호 선원들이 11일 오만 살랄라항에 도착했다.
선장 김성규 씨 등 한국인 선원 5명은 지난 6일 소말리아 호비요항에서 억류상태에서 풀려난 뒤 삼호드림호의 항해를 재개, 닷새 만에 이날 살랄라항에 도착했다.
선원들은 장기간 억류생활로 인해 심신이 극도로 지쳐 있는 상황이라며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생과 사의 경계가 모호하기만 했던 선원들의 처절했던 억류생활을 가족들과 친구, 선사 관계자들의 말들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선원들이 해적에 납치된 것은 지난 4월 4일, 해적 출몰이 거의 없던 해역인 인도양 한복판에서였다.
이라크를 떠나 미국 루이지애나로 향하던 삼호드림호는 1억7천만달러(약 1천880억원) 상당의 원유를 실은 30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이었지만 각종 무기로 중무장한 해적의 소형 보트 앞에서는 꼼짝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청해부대 소속 충무공 이순신함은 현장으로 급파돼 삼호드림호에 30마일 가까이 접근하는데 성공했지만 선원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을 고려, 강제진압 작전을 강행하지 않았다.
삼호드림호는 결국 해적 본거지인 호비요항으로 끌려갔고, 선원들은 해적들에게 모든 것을 다 뺏긴 채 속옷 한 벌과 담요 한 장만으로 버텨야 하는 처참한 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해적은 초기에 삼호드림호 선사인 삼호해운에 석방금으로 2천만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사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거액을 요구한 탓에 석방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협상에 진전이 없자 해적들도 점점 거칠어져 갔다.
해적들은 3일간 잠을 재우지 않고 폭행하는가 하면 선원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모두 죽이겠다며 기관총을 들이밀기도 했다.
일부 해적들은 마리화나를 피운 환각 상태에서 또는 만취 상태에서 난동을 부리며 선원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로 늘어만 가고 해적에게 언제 살해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까지 더해지면서 선원들의 심신은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석방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피랍 선원 가족들의 초조함은 커져 갔다.
피랍 초기 해적이 간혹 허용한 전화통화를 통해 애써 의연한 모습을 지켰던 남편, 아버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호소할 땐 무력감에 가슴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선원 가족들은 피랍 5개월이 흐른 지난 9월 초 "선원들은 언제든지 살해될 수 있다는 공포감 속에 인간 이하의 참혹한 삶을 살고 있다"며 "어떤 방법으로든 해적에게 석방금 지급을 약속해 선원들을 풀려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석방 협상은 삼호해운이 거액의 석방금을 지급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지난 6일 최종 타결됐다.
정확한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 외신은 950만달러(약 105억원)를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지불된 몸값 중 역대 최고액으로, 지난해 11월 그리스의 초대형 유조선 마란 센타우루스호 석방 당시 소말리아 해적에게 지급됐던 최고 금액 550만∼700만달러를 훨씬 웃도는 액수였다.
악마의 사신과도 다름 없었던 해적들은 헬기에서 갑판 위로 던져진 돈가방을 받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유유히 삼호드림호에서 내려 사라졌다.
지옥과도 같았던 217일간의 억류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이는 2006년 4월 원양어선 동원호 피랍사건 이후 7건의 해적 피해 사례 중 최장 기간 억류된 기록이다. 동원호는 117일 만에, 이듬해 5월 마부노 1,2호는 174일만에 풀려났다.
선원들은 오만 무스카트, 두바이를 경유해 이르면 13일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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