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더 인간미 넘치는 유령이야기, 현재가 아닌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연극 '커튼콜의 유령'이 내달 10일부터 26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된다. |
(아주경제 김나현 기자)
때는 1950년. 당대의 국립극장인 ‘부민관’에서는 연극 ‘판도라의 화실’ 공연이 한창이다. 재능은 없지만 젊고 매력적인 화가 세실을 사이에 두고 지적이고 냉정한 귀족부인 마리와 도도하고 거만한 귀족부인 마타가 다툰 끝에 비극으로 치닫는다는 내용이다. 얽히고 설킨 사랑의 비극 판도라의 화실에 감동한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는 커튼콜(공연이 끝난 후 출연진들이 관객의 박수에 답하여 다시 무대로 나오는 것) 중 갑자기 어디선가 아무런 관계없는 낯선 여자가 무대에 등장한다. 출연진들은 당황하지만 그래도 막은 내려야 하기에 즉흥연기로 위기를 넘긴다. 하지만 낯선 여자의 정체가 유령임을 알게 되고 더구나 유령이 하나가 아닌 둘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배우들은 공포에 질리고 만다.
연극 ‘커튼콜의 유령’은 이 부민관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한다. ‘극장에 유령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라는 작은 상상에서 비롯된 이 작품은 끊임없이 무대에 나타나 연극을 망쳐놓는 유령들과 그들의 훼방을 어떻게든 작품으로 승화시키려는 배우들의 갈등이 조화를 이루는 절묘한 상황희극이다. 한 편의 연극에 한 번이면 충분할 커튼콜이 네 번, 다섯 번 반복되는 동안 유령과 함께 등장하는 무대 위의 기현상, 폴터가이스트(악취, 소음, 물건이 날아다니는 등의 괴현상)가 더욱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령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커튼콜의 유령을 공포극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또 유령들의 존재를 숨기고 연극을 잘 마무리하려는 배우들의 노력이 우스꽝스럽다고 해서 단순이 웃긴 연극으로 짐작하는 것도 섣부른 일이다.
커튼콜의 유령을 직접 쓰고 연출한 이해제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미, 휴머니즘 그리고 소통에 관한 그 무엇”을 전하고 싶다 말한다. 실제로 줄기차게 무대에 욕심을 내는 유령들과 어떻게든 그들의 출현을 연극 속에 녹여내려는 배우들은 본질적으로 대립관계에 있지만 겉으로는 연극 판도라의 화실 안에서 어떻게든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옥신각신하다 그만 서로 정까지 들게 된다. 생전에 부민관에서 연극을 했던 배우 출신(?)인 두 유령이 죽어서도 부민관을 맴돌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배우들이 이해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미 넘치는 유령 이야기, 현재가 아닌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이해제의 전공이나 다름없다. 연극 ‘흉가에 볕들어라’ ‘설공찬전’ 등에서 귀신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그는 “어쩌면 귀신 이야기는 모든 걸 가능하게끔 하는 판타지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귀신의 입을 통해 하고픈 말을 다 토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1950년대라는 시대 설정 또한 이해제의 손을 거치면 또 하나의 판타지 열쇠가 된다. 그의 연극 ‘코끼리와 나’ ‘다리퐁 모단걸’등에서처럼, 역사적 사건을 담담하게 겪어내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을 커튼콜의 유령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무대에는 ‘선덕여왕’ ‘웃음의 대학’의 엄효섭, ‘오빠가 돌아왔다’의 황영희, ‘클로져’의 진경, ‘엄마들의 수다’의 김로사, ‘점프’의 히로인 윤정열까지 현재 대학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고의 배우들이 함께한다. 2010년의 마지막 12월을 보다 유쾌한 기분으로, 따뜻한 가슴으로 만끽하고 싶다면 커튼콜의 유령을, 아니 판도라의 화실을 만나보자. 반복되는 커튼콜마다 유령들의 돌발연기에, 배우들의 즉흥연기에 힘껏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유령과 배우들이 빚어내는 진한 감동의 무대 연극 커튼콜의 유령은 내달 10일부터 26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공연된다. 입장료 2만원. 문의 157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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