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보유 재산은 380억 위안, 원화로 환산하면 무려 6조5000억 원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녀가 직장생활을 통해 모은 3만 위안으로 사업을 일군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사업가라는 사실.
그녀는 푸룬보고서가 선정한 세계 여자 자수성가 성공인 리스트에도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녀의 대답은 겸손하면서도 약간은 식상하다.
“운이 좋았다. 하늘이 준 기회를 잘 잡았고 사람을 중요시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천운(天運)은 그것을 알아보는 혜안(慧眼)과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자에게 자신을 허락하는 법.
1985년 당시 27세이던 장인은 선전(深?)의 한 합자기업에서 재무를 담당하며 높은 연봉을 받던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당시 한 제지업체의 위탁을 받아 폐지를 구입하기 위해 홍콩을 방문하게 됐어요. 그 때 중국의 종이 부족 현상을 파악하게 됐고 바로 이거다 싶었죠”.
그녀는 억만장자의 문을 들어서게 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장인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산림자원이 부족했고, 특히 제지사업은 매우 낙후돼 있어 대부분의 폐지와 펄프를 수입해 의존하고 있었다.
장인은 “나는 그때 선진국의 폐지가 중국에선 ‘황금’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챘어요”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황금을 캘 수 있는 ‘노다지’라 해도 이른바 3D 업종인 폐지사업을 젊은 여자가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장인은 그런 고정관념에 조금도 사로잡혀있지 않았다.
“폐지회수 종사자 가운데는 많이 배우지 못해 문화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의리’를 중요시 여겼고 이점에서 나와 매우 통했어요”
든든한 업계 동료들과 홍콩의 경제 발전기라는 호재에 힘입어 장인 홍콩 입성 6년 만에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뿐만 아니라 사업의 동반자이자 평생의 반려자인 지금의 남편 류밍중(劉名中)을 만나게 된다.
장인ㆍ류밍중 부부는 1990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가 중난홀딩스(中南控股公司)를 설립해 사업을 확장했다.
장인 부부는 폐지자원이 풍부하고 재활용 사업이 발달한 미국에서 또 다른 사업기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장인은 미국 수출품 적재 컨테이너가 미국에서 화물을 하적 하고 중국으로 돌아갈 땐 텅 빈 채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운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미국에서 회수한 폐지를 이들 빈 컨테이너에 실어 중국으로 운송하는 것.
덕분에 장인은 운송비를 대폭 절감하면서 대량의 폐지를 중국으로 수출해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장인 부부가 미국 사업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중난홀딩스는 7개의 폐지포장공장과 운수업체를 설립하게 된다.
급기야 2002년 중난홀딩스는 미국 최대의 컨테이너수출 기업이 됐고, 현재 유럽과 미국 최대의 종이 원료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중난홀딩스의 연간 수출량은 500만t으로 이는 12피트 컨테이너 20만 개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2006년에는 홍콩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면서 자산 270억 위안으로 늘었고, 푸룬 선정 백만장자 리스트 순위가 전년도의 36위에서 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모든 성공 사업가가 그렇듯 그녀에게도 모진 시련의 시기는 있었다.
2008년 성공가도를 ‘고속질주’하던 그녀는 이른바 ‘제안(提案)’, ‘피와 땀(血汗)’, ’파산(破産)’ 스캔들로 불리는 3중 ‘추돌’사고를 당하게 된다.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이던 장인은 2008년 3월 열린 양회(兩會)에서 개정된 노동법이 지나치게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업인의 경영을 제한하고 있다며 노동법의 개정을 ‘제안’했다.
그녀는 이 제안으로 여론과 노동계의 질타를 받았고, 홍콩SACOM(대학생과 교수로 구성된 불량기업 감찰 민간기구)으로부터 노동자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기업으로 낙인 찍혔다.
SACOM은 주룽제지의 주주들에게 주룽의 주식을 처분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고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져만 갔다.
여론은 그녀를 악랄한 자본주의자의 대표로 몰아갔다.
장인은 훗날 “나는 여장부에요. 하지만 당시 억울한 감정을 누르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고 고백했다.
장인은 5월 7일 결국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공장 내부를 대외에 공개했다.
최첨단 제지 시설과 깨끗한 환경, 그리고 합리적인 근무환경을 두 눈으로 확인한 기자들은 그 간의 소동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장인은 이렇게 인생의 최대 위기를 넘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12월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주룽제지는 ‘파산’ 스캔들에 휘말리게 된다.
이는 수익 후 재투자, 시설 확충을 위해 대출을 받으며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주룽제지에 대해 시장의 지나친 우려가 낳은 결과였다.
장인은 즉각적인 지출 삭감, 중소기업에게 적합한 신제품 개발과 성공으로 시장을 안심시켰다.
결국 장인은 시련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폐지를 재활용해 크라프트판지(갈색의 박스용 두꺼운 판지) 생산을 주업으로 하는 주룽제지는 친환경 산업 부흥과 더불어 또 한번의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아주경제 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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