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직전인 지난 1992년 8월 중순 아내와 함께 텐진(天津)공항을 통해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폐차장에서 꺼내온 듯, 금방이라도 해체될 것 같아 보이는 낡고 위험한 봉고차를 타고 3시간 가까이 달린 끝에 간신히 베이징역에 도착했다.
행선지가 동북지방과 백두산이어서 지린(吉林)이나 창춘(長春) 등지로 가는 기차를 타야하는데 베이징역 매표소는 철망문 셔터까지 내려놓은 상태였다. 매표소안은 물론 역사 밖의 광장까지 발디딜틈이 없이 붐볐다. 전단지 한장 펴고 앉을 만한 공간도 찾기 힘들었다..
먼지를 뒤짚어쓰고 모기에 뜯기며 광장에서 꼬박 하루밤을 보내다시피한 뒤 천신만고 끝에 지린행 침대칸 기차표를 얻었다. 물론 공짜가 아니었다. 브로커에게 약속대로 표값의 세배나 되는 수고료를 지불한 결과였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이 걸려도 표를 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상황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중국에서 처음인 기차여행은 이렇게 표를 구하는 과정부터 순탄치가 않았다. 더욱이 수난은 기차에 오르고 나서도 계속됐다. 침대가 여섯칸이 있는 우리 좌석 잉워(硬卧)를 찾아가니 누군가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차표를 들이대고 자리를 비워달라는 시늉을 해도 두명의 중년 남자는 모르쇠로 버텼다.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침대칸과 구분돼 있는 일반 좌석칸으로 나왔다. 막상 승무원을 만났으나 말이 안되니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할 방도가 없었다. 더욱이 실랑이 도중 기차표를 침대칸에 있는 아내에게 맡기고 나왔기 때문에 침대칸으로 들어가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허둥대는 내 꼴을 한참 지켜본 뒤에야 승무원들은 침대칸에서 무슨일이 생겼구나 생각했는지 비로소 열쇠를 따고 나를 침대칸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몇마디 얘기를 나누더니 승무원들은 잉쭈오(硬座 좌석 자리)표를 사서 침대칸에 무단으로 들어온 남자들을 데리고 나갔다. 기차표 구입 만큼이나 힘든 좌석 차지하기 투쟁도 그렇게 마무리 됐다.
기차표를 구하고 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른 뒤여서 일까. 반 평도 안되는 비좁은 공간이지만 침대칸에 발 뻗고 누우니 심신이 편안해지는게 세상에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의 험난한 관문은 나와 기차여행의 인연에 있어 어떤 계시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중국의 장거리 기차 여행에 잘 적응해 갔고 나도 모르게 기차 여행 매니아가 돼 갔다. 장거리 침대칸 기차여행에 익숙해지다 보니 덜컹 대는 기관차의 진동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기분좋은 울림으로 느껴졌다.
기차안의 한 평도 안되는 침대칸 침상. 이곳은 어머니의 자궁속처럼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기관차의 부드러운 진동에 온갖 시름이 씻겨나가 듯 기분이 상쾌하고 홀가분해진다. 그것은 마치 자장가 처럼 부드럽게 기분좋은 꿈속으로 나를 이끌어준다.
기차를 타면 안온함과 평정심이 느껴진다. 다소 비좁다는 것 말고는 이곳에는 불편할 게 하나도 없다. 잠을 청하고 책과 신문을 보고, 노트북을 켜놓고 일을 할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데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무엇보다 하루 이상 달리는 장거리 기차안에서는 각양 각색의 세상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기차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예정에 없던 숱한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들과 얘기하고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장거리 기차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며 즐거움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귀향하는 농민공, 하이난다오에서 헤이룽장성으로 설을 쇠러가는 대학생, 전국을 누비는 사료회사 영업맨, 상하이의 의료기기 업체 사장, 베이징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멋쟁이 시안(西安) 아가씨. 그들은 하나같이 중국 공부의 스승이자, 공짜 관광 가이드이며 홀로 여행에 나선 나에게 한없이 고맙고 친숙한 여로의 동반자들이다.
c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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