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은 팬더와 바이주 돼지의 고장
기차의 차창 밖에는 천태만상의 중국이 펼쳐진다. 몇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는 귤 밭, 황토 토굴로 된 가옥, 희뿌연 잿빛 지붕을 인 고적한 산촌 마을, 싯누런 황토색 하천, 크림슨 색 망토를 걸친 잡석 사막속의 티벳 수행자, 영하 40도 강추위속의 헤이룽장(黑龍江) 북방 설원. 기차의 차창밖은 그 자체로서 중국 산수 풍경화이며 생생한 동영상 다큐멘터리다.
지난 2007년 11월초. 출장 목적은 쓰촨(四川)성 청두(成都)를 경유해 이빈시에서 떨어진 자연마을과 생태환경을 취재하고 다시 청두로 나와 동남쪽 장시(江西)성의 우위안라는 옛모습의 농촌마을을 둘러보는 것이다. 기차 여행은 중부내륙인 베이징-청두- 장시성 난창(南昌)- 베이징으로 일정이 짜여졌다. 기차의 총 이동 시간은 대략 70여시간.
저녁 베이징 서역을 출발한 기차는 스좌장(石家庄) 뤄양(洛陽) 멘양(綿陽) 청두를 주요 중간 기착점으로 해서 서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어디까지 갑니까?”
아까부터 독한 중국 술 바이주(白酒)를 병나발로 들이키며 흘끗 흘끗 나를 쳐다 보던 옆자리의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청두에 가요.”
이 남자는 소심한 성격에 별로 사교적이지도 않아 보였는데 취기가 돌자 처음에 받은 인상과는 달리 무척 적극적으로 변했다. 벌써 반명째 들이킨 바이주 때문인지 얼굴이 불콰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말수도 점점 많아졌다.
그는 캔맥주를 마시고 있는 나를 향해 건배를 제의하며 물었다.
“우리 중국인들이 1년에 마시는 바이주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얼마나 되지요?”
“저기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라는 도시에 가본적 있어요? 거기에 시후(西湖)라는 호수가 있지요. 매년 중국인들이 마시는 바이주는 시후 만큼 됩니다.”
허풍이다 싶었지만 구태여 진위를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시비를 가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굳이 술 취한 사람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기차칸에서 처음 만난 이 남자와 유쾌하고 재밌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중국인들 정말 술 잘하네요”
그의 비위를 맞춰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이 허풍장이 취객은 알고보니 내가 찾아갈 이빈의 우량예(五粮液) 공장 노동자였다. 쓰촨성 토박이인 그는 청두와 이빈 등 지역 사정에 대해 꽤나 이해가 깊었다.
“쓰촨성의 명물은 누구뭐래도 팬더입니다. 팬더외에 바이주가 유명해 바이주의 고향이라고 불렀지요. 우량예 루저우라쟈오 젠란춘 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한 바이주가 모두 이빈 더양 등 쓰촨성에서 생산되지요. 우리회사는 우량예 외에도 우량춘(五粮醇) 우량춘(五粮春) 진류푸(金六福)등 60여종을 생산해요. 도수는 39도와 52도가 주종을 이루는데 시음용으로 68도와 72도의 고도주도 있어요.”
우리가 고량주라고 부르는 바이주 얘기를 한참 동안 늘어놓더니 그는 갑자기 돼지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쓰촨성은 돼지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쓰촨의 돼지사육 두수는 전국의 30%를 차지합니다. 중국 돼지 10마리중 3마리는 쓰촨 산인 셈이지요. 그래서 세계 유명 사료회사들이 모두 들어와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요. 나도 우량예 공장으로 옮기기 전 한동안 청두 인근의 사료공장에서 일했어요.”
내가 맥주 한 캔을 마시는 동안 그는 이미 독한 술 바이주 큰 병 하나를 다 비우고 있었다.
마지막 한방울까지 입속에 탈탈 털어 넣은 그는 “한병을 더 마셔도 끄떡 없다”며 같이 한병씩 더 마시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빨간 토끼눈인 그는 이미 많이 취해있었다
.
나는 원래 술을 잘 못한다며 부드럽게 손사례를 쳤다.
그는 빨간 눈을 한채 ‘정말 재미없고 따분한 사람 다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참동안 빤히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시간도 꽤늦었다. 내가 신문을 뒤적이는 동안 그는 세면장에 다녀오고 짐과 자리를 정리하느라 한참 부스럭 거린 뒤 잠시후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chk@
(아주경제 최헌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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