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성공경영> 기업을 패망으로 이끄는 집안싸움 ‘同室操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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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12-0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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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박정규 상무) 중국 고사에서 혈육간 집안싸움으로 인해 나라를 빼앗긴 사례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경우 위환공, 위선공, 위혜공 등을 거치며 공자들간의 골육상쟁이 끊이지 않았고 16대 위의공에 이르러 국력이 급격히 쇠락했다. 위나라와 동시대에 융성했던 정나라에서는 서오범의 여동생을 빼앗기 위해 공손초와 공손흑 형제가 창을 들고 죽기를 무릅쓰고 다투는 등(동실조과·同室操戈) 형제간의 잦은 불화로 파멸을 자초했다.
 
삼국지시대의 초기로 일컬어지는 후한(後漢) 말기. 원소는 조조와 견줄 정도로 세력이 강했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후 후계자로 지목됐던 3남 원상과 그를 인정하지 않는 장남 원담이 반목해 내전이 발생했고, 결국 조조에게 패망하고 말았다. 외부 힘이 아닌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무너지고 만 것이다.

원소를 무찌른 조조는 훌륭한 무장이기도 했지만, 문학 애호가이기도 했다. 그가 실권을 휘두르기 시작한 동한시대 말 그의 문하에는 시인들이 운집했다. 조조는 조비, 조창, 조식 등 아들 세 명 가운데 문재가 뛰어났던 조식을 지극히 아꼈다. 주위에서 맏아들까지 제치고 제위까지 조식에게 넘기지 않을 지 우려할 정도였다. 조조는 그러나 문재(文才) 보다는 나라를 이끌 통치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사망하면서 제위를 장남인 조비에게 물려줬다. 조비가 영토를 더욱 확장해 위나라를 세우니 그가 곧 문제(文帝)였다.

선왕이 생존해 있을 때부터 항상 동생을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문제가 하루는 조식을 불렀다. 용상 아래 계단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동생에게 ‘일곱 발자국을 걷는 동안 시를 한 수 지으라’고 명했다. 시를 짓지 못하면 국법으로 엄히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식은 일곱걸음을 걸으며 시를 읊었다.
'콩을 삶는데 콩깍지로 불을 때니(煮豆燃豆萁) /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豆在釜中泣) / 본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거늘(本是同根生) / 어찌 이리도 급히 삶아대는가(相煎何太急)’
형의 손에 죽을 지도 모를 위기에서 지은 이 시가 바로 칠보지시(七步之詩)이다.

조식은 자신을 콩에, 조비를 콩깍지에 비유해 원래는 한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느냐고 서러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말들 들은 조비(문제)는 친동생을 죽이려고 한 자신을 부끄러워 해 동생을 살려줬다.

중국 역사에서 형제들이 다투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적지 않게 등장했다. 권력의 정점이 ‘황제’였기에 왕자들은 제위를 놓고 쟁탈전을 벌였고, 권력을 잡은 자는 나머지 왕자들이 언제든지 역모를 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의심해 친형제 또는 이복형제들을 잔인하게 제거하곤 했다. 명나라-청나라에 이르러서도 후계자를 일찍 정하지 못했던 황제들은 자식들의 혈투를 목도하며 뜬 눈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중국 역사상 골육상쟁의 비극은 오늘날 한국 재계에서 재연되고 있다. 현대그룹, 한진그룹, 한화그룹, 두산그룹, 롯데그룹, 대한전선, 동아제약 등 형제간 분쟁을 겪지 않은 기업이 이상하리만큼 많은 것이 한국 기업들의 특징이다. '형제경영’으로 가장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2세들도 예외 없이 분쟁을 겪으며 국민들의 걱정거리 대상으로 떠올랐다.
 
현대그룹의 경우 그룹 핵분열로 ‘형제의 난’이 막을 내렸나 싶었으나, 최근 현대건설 인수문제로 또 다른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현대건설을 다시 인수해 적통성을 되살리겠다는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현대건설을 끌어들여 명실상부한 현대그룹의 후계자로서 위상을 세우겠다는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이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양측의 전쟁은 비방전에 이어 채권단을 중심에 두고 인수대금 조달 논쟁에다 손해배상·명예훼손 등 법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은 1982년 장남 몽필의 타계로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맡게 된 정몽구 회장에 대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절대적인 신임을 주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정주영 회장이 말년에 몽구 회장과 5남 몽헌을 공동회장으로 맡기는 등 이원화 지배체제를 꾀하는 바람에 형제의 난으로 비화됐던 것이다.

현대그룹이 자동차, 중공업, 건설-상선 등으로 분열된 이후 2003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 몽헌 회장의 유지를 이어 현정은 회장이 건설과 상선을 맡았지만 시숙들은 ‘현씨 가문에 현대를 맡길 수는 없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대그룹을 공격해왔다.

현대그룹-현대차그룹의 대결은 결과적으로 당사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건설 우선협상자 선정 입찰에서 현대그룹이 써넣은 것으로 알려진 5조5,000억원대의 금액은 전문가들의 예상가격보다 1조원 이상 많은 것이다. 현대그룹이 채권단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해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권에 돌아가더라도 이에 못지않은 금액(5조1,000억원)을 지불해야 할 입장이다.
 
기업을 둘러싼 골육상쟁은 전세계적으로도 적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 재계에서 유독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게 경영학자들의 지적이다. 한국의 2세, 3세들이 기업을 둘러싸고 빈번하게 내홍을 치르는 것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기업을 일으킨 우리나라의 총수들이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를 유산으로 남겨줄 뿐 자식들에게 ‘화합하고, 서로 베푸는 정신’은 가르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대인 명문가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경우 1750년부터 260여년간 세계의 금융제국을 이어오고 있다. 전세계의 매일 금 시세를 이 집안이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500조원대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로스차일드가 자녀 교육의 핵심은 형제간 화합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중시조인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임종 직전 자신의 다섯 아들에게 다섯개의 화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화살 하나씩은 꺾을 수 있지만 다섯개가 뭉치면 꺾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로스차일드가의 문장은 묶여 있는 ‘다섯개의 화살’이 됐다. 수많은 재벌집안이 재판에 휘말렸지만 로스차일드 가문 형제들은 화합으로 세계 금융제국의 지배자가 됐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국민들로부터, 세계인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는 ‘명문가문’이 탄생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sky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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