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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흥 산업부국장 |
지금으로부터 144년 전. 조선 곳곳에 세워진 척화비문(斥和碑文) 내용이다.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는 당시 개화파의 발목을 잡는 쇄국정책의 상징물이었다.
1866년, 조선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호를 대동강서 침몰시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대동강을 따라 평양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한 제너럴 셔먼호를 향해 당시 조선군이 반격을 가하면서 유례없는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강화도의 초지진,덕진진에 이어 광성진전투까지 치룬 이른바 신미양요.
아시아 팽창주의 정책을 추진하던 미국이 1871년 강화도 침공을 계기로 촉발된 신미양요는 당시 조선의 외교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최종 타결돼 온나라가 떠들석하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한 지 꼭 '1세기 44년' 만이다.
지난 2004년 처음으로 칠레와 FTA를 맺은 후 우리나라는 현재 싱가포르ㆍ유럽연합과 FTA를 체결한 상태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미 FTA는 우리 경제와 외교는 물론 사회 전반의 제도, 관행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 대한 후유증이 적지 않다. '이익의 균형'을 맞추겠다던 정부 공언과 달리 '말로 주고 되로 받았다'는 평가다.
이번 재협상을 통한 양국의 손익계산서를 뽑아보면 기존 협정과 비교해 우리 측 타격이 만만치 않다. 야당은 우리가 미국에 양보한 것이 3조원, 우리가 양보받은 게 3000억원 정도로 봤다.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분야는 자동차다. 당초 자동차 대미수출시 ’2.5% 관세철폐‘ 합의로 반색을 했던 우리 기업들은 뒤집힌 결과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시기를 더 늦추고 특별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까지 거머줬다. 2007년 합의 사항을 뒤집으면서 미국 자동차업계의 반사이익이 커지게됐다.
뿐만아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3사의 한국시장 진입 시 관세인하 등 미국의 유리한 조건이 그대로 관철됐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미국차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셈이다. 섬유와 물류분야에선 이익도 챙겼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손해본 장사'를 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한미 FTA 발효의 최종 몫은 한국 국회와 미국 의회다. 미국 의회 비준은 한국보다 순탄할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여야의 첨예한 대립으로 소관 상임위 상정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008년 12월, 외통위에서 연출(?)됐던 '해머와 전기톱의 추억'.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악몽같은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FTA체결을 계기로 한미간 무역 글로벌스탠더드를 조기실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자칫 모든 기준을 미국식 흐름에 맞추거나 따라가는'신종속주의'에 빠질 우려도 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기존 '관세 호재'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이젠 홀로서기를 준비해야할 때다. 하이테크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품질경쟁력을 확보하면 '2.5% 관세'벽 쯤은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현대기아차가 독자적으로 미주시장서 우뚝 선것 처럼 앞으로도 고속질주할 수 있는 기반을 '자주적'으로 만들면 된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흥선대원군이 척화비에 새겨넣은 이 문구가 오늘의 국제환경에 전혀 맞지 않는 얘기지만 그 속에 담긴 자주정신만큼은 한번쯤 깊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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