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2 붉은 공화국의 '자본주의형 군상들'
중국에 증권거래소가 탄생한 것은 지난 1990년이지만 주식시장이 본 궤도에 오른 것은 이로부터 15년이 지난 뒤였다. 중국은 지난 2005년 주식권리분할(股權分置)개혁을 단행했다. 그전까지는 같은 발행주식이라도 주권에 차이가 있었으나 이 개혁으로 하나의 주식은 모두 같은 권리를 갖게 됐다. 동주동가(同株同價)라 불리는 이 개혁으로 인해 증시 개설후 15년간 개장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로 장기 침체장을 보여왔던 중국 증시는 거대한 비상의 날개짓을 하게 됐다.
2005년 주식개혁 조치가 취해진 뒤 중국 주식은 마치 새장에서 나온 새처럼 비상에 비상을 거듭한다. 특히 중국 증시는 2007년 들어 폭발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다. 상하이 지수는 2007년 2월 2000대, 5월 4000대, 10월 중순에는 6000포인트 대의 역사상 고점을 기록했다. 당시 6100 포인트가 천정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7000포인트에서 8000포인트까지 치솟을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魔)의 6100포인트라는 꼭지점에서 하차 하지 못한 사람들은 훗날 두고 두고 후회막급해 하지만 여전히 미련을 못버린채 증시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상하이 종합지수는 이후 5000포인트, 4000포인트, 3000포인트로 주저앉았으며 지금은 2800포인트대까지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12.5계획원년인 2011년에도 상하이지수는 잘해야 3000포인트대에서 등락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고물가로 인해 통화긴축이 강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주식시장에 대한 열기를 보면 이런 사람들이 신중국 설립후 어떻게 30년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견뎌냈을 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모로 보나 중국인들은 세상에서 자본주의와 가장 친밀한 사람들 같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소외감을 잘 견디고, 기구한 자신의 처지를 쉽게 팔자소관으로 받아들인다. 사회주의의 핵심가치인 공부론(共富論)과 평균주의에도 크게 동의하는 눈치가 아니다. .
개혁개방 30년간 중국인들에게 가장 경이로운 변화중 하나는 증권시장이 개설되고 주거용 주택이 상품으로 매매되는 것이었다. 특히 증권은 적은 돈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있는 투자상품으로 여겨졌다. 증시 개설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제사회적 신분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게 했다. 이에 따라 투자 열풍이 점차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중국 영화중에 '궈넨(過年·설)'이라는 작품이 있다. 영화 '궈넨'은 출가해 도시로 나간 아들딸 가족들이 산골 노부모 집에 모여들어 설을 쇠는 내용이다. 고향을 떠나 도시생활을 하는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줄거리인데 주식투자가 주요 소재의 하나로 다뤄지고 있다. 노모는 주식으로 큰 돈을 잃고 직장까지 잃게 된 아들을 땅을 팔아서라도 도우려하고, 또다른 아들이 이를 저지하고 나서면서 모처럼의 설날 가족간의 재회가 재산 상속의 다툼으로 풍비박산이 날 위기에 처한다. .
한 지방TV는 2006~2007년 주식열풍이 한참일 무렵 젊은 주식 재벌의 사랑과 야망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방영했다. 드라마에서 빈털터리의 이 청년은 창의적 사고 하나로 거대기업을 일구고 나스닥 상장에 성공해 떼돈을 벌어들인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외에도 실적주 투자자와 공모주 청약자, 주식개혁 당시 찬밥인 비상장주를 모은 사람들, 스톡옵션을 받은 첨단 IT(정보기술)기업 종사자들이 부지기수로 벼락부자로 둔갑했다.
이처럼 주식투자를 통해 하룻밤새 벼락 부자가 탄생했는가 하면 주식투자로 문전옥답과 직장을 날리고 사랑까지 잃어버린 채 나락으로 추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중국인들에게 주식은 삶의 희극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했다. 숱한 사람들이 주식에 중독이 됐고 주식으로 울고 웃었다.
지인중 베이징의 주부 차오(曺)씨는 집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증권 모니터를 들여다 보며 소일할 정도로 주식에 푹 빠져서 지낸다. 밖에 잠깐 외출할때도 휴대폰으로 접속해 시황을 체크하고 시시각각 투자 종목의 주가 변동 상황을 점검한다. 차오씨는 주식을 떠나서는 불안해 한시도 견딜수 없다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집안 살림에서도 거의 손을 뗐다.
이러다 보니 한때 배우자의 주식 중독으로 파경을 맞는 가정이 늘어나고 주식투자에 실패한 뒤 투신 자살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연일 톱뉴스로 주요 매체에 소개됐다. 어떤 사회학자는 ‘인터넷 중독’에 정신병 개념을 도입한 것 처럼 ‘주식 중독’도 정신병의 범주에 포함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기도 했다.
한 투자자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대략 하루에 7~8시간 컴퓨터 모니터나 휴대폰으로 시세를 들여다 봅니다. 머리에는 쥐가 날 정도고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 얻는 것은 몸과 마음의 병뿐 이지요. 허리도 아프고 시력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투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습니다. 주식은 내게있어 현금 파쇄기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도 쉽게 포기가 안되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아주경제 최헌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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