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강조하는 러시아측 논평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성공한 외교라는 평가가 있지만, 러시아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일단 우리 정부는 이번 러시아를 상대로 한 외교를 성공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외교통상부 북핵정책과 관계자는 16일 "(회담결과가) 좋았다는 얘길 들었다. 천안함 사태 때와 비교해 봐도 러시아가 아주 많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러시아가 공개적으로 잇따라 한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 13일 박의춘 북한 외무상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과의 회담 직후 인명 피해를 초래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는 한편, 북한의 핵 활동 중단을 명시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지난 15일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러 외무차관과 회담한 이후 현지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러 측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이 유엔 안보리 결의와 9·19 공동성명에 위배되고, 연평도 포격도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의 핵 활동과 군사적 도발로 인해 조성된 한반도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아직 대화 국면이 시기상조라고 판단하는 한·미·일 3국과 달리 러시아가 여전히 제재나 압박보다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입장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거나 제재를 통해 궁지로 몰고가는 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같은 러시아의 입장은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우려해 압박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분석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15일 서울서 열린 한미동맹 콘퍼런스에서 “북한을 압박해 긴장을 완화하는 노력에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이유는 자국의 대북압박이 북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도발 중단을 강요할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낮은 수준의 압박이 북한 체제 붕괴를 비롯한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압박을 전혀 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관계자 역시 "러시아가 냉전을 겪은 나라인데 한반도 정책을 그렇게 확 바꾸기는 쉽지 않다"면서 "(북한과) 대화를 하라고 반복하는 것도 한반도 긴장 우려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위성락 본부장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생겼다고 판단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중국과 달리 대외적으로 북한에 대한 도발행위를 비판하는 입장 표명으로 한·미·일 등의 정치적인 대북 압박에는 동조하면서도 직접적인 제재는 반대하는 이중 해법을 통해 실리를 챙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이번 외교전에서 남·북한 어느 쪽도 완전히 러시아를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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