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 2008년 ‘추격자’로 대한민국 영화계를 문자 그대로 ‘발칵’ 뒤집어 놓은 장본인이다. 숨을 옥죄는 빠른 전개와 처절함이 배인 ‘날것 액션’에 관객과 평단은 열광했다. 흥행은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의 차기작은 기획 단계부터 충무로의 입소문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입소문이 실체로 드러나기까지 2년여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뚜껑이 열렸다. ‘2년차 징크스’가 절대 기우였음을 나홍진 감독은 증명했다.
◆ ‘추격자’는 없었다. 단지 ‘황해’만 있을 뿐
올 하반기 최고 기대작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황해’의 몫이었다. 그만큼 영화계의 기대치가 컸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드러난 아킬레스건에 진통도 많았다. 바로 ‘추격자’와의 비교였다.
하지만 드러난 결과물은 이 같은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단지 배우만 같을 뿐 완벽한‘새판’이었다.
‘황해’는 전적으로 구남(하정우)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채 다가서지도 그렇다고 멀찌감치 떨어지지도 않았다. 때론 뼈를 깎는 구남의 고통조차 한 발 물러서 관객들에게 객관성을 제시했다.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며, 사실성에 초점도 맞췄다. 여기에 관객들에게 생각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듯 숨 돌릴 틈 없는 화면 전개로 힘을 더했다.
먼저 도박 빚과 한국으로 간 아내마저 연락이 끊겨 막다른 골목에 몰린 구남이 면가의 제의를 받을 수밖에 없던 이유를 영화 시작과 함께 설명한다. 연출에 의한 목적 강요가 아닌 관객 스스로에게 결과를 제시한 뒤 판단을 맡기는 모양새다. '혹시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란 질문이 영화 내내 쏟아졌다.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영화적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날것 특유의 생경함을 그린다. 약자로 그려진 구남의 현실과, 힘의 우위를 쥔 면가의 야수성을 중국 내 조선족의 양극단으로 대변시켰다. 이를 위해 구남이 등장하는 중국 내 시퀀스는 주로 텅 빈 거리나 공허한 느낌의 전경을 잡은 풀 샷을 이용했다. 반면 면가의 경우 길들여 지지 않은 야생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클로즈업과 도끼 또는 소뼈 등 도구를 적절히 섞어 구남과의 대비를 극대화 시켰다.
무엇보다 ‘황해’가 ‘추격자’와 비교될 수 없는 가장 큰 차이는 장르적 잠재성에 있을 것이다. ‘추격자’는 두 인물의 격돌로 발생되는 쇳소리의 울림이었다. 그 만큼 강렬했고,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황해’는 구남의 시선과 발길을 따라가는 드라마에 가깝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물 먹은 스펀지’처럼 먹먹한 이야기다. 물론 액션도 있지만 이는 뒷맛을 수습하는 양념에 불과하다.
지켜야 할 딸이 있고, 만나고픈 아내가 있는 평범한 조선족 남자가 극한의 상황으로 몰리면서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스토리는 분명 ‘추격자’의 울림과는 차이를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남이 느끼는 절실함과 절망감이 관객들의 가슴을 물먹은 스펀지처럼 ‘축축하고’ 때론 ‘무겁게’ 만들며, 또 그것을 분명히 느끼게 했다.
영화 시작과 함께 “개병이 시작됐다”는 구남의 독백처럼 폭주하는 각 인물들의 심리가 테두리를 형성한다면, 끝에 등장하는 “누가 날 이곳까지 밀어 냈는지 꼭 알아야 겠다”는 대사가 바로 그 테두리를 채울 내용물이다.
폭주하는 세상에 휩쓸린 조선족 청년 구남의 절실함과 절박함. ‘황해’가 담은 그림이었다.
◆ 다만 굳이 찾아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을까. 눈에 띄는 아쉬움도 분명했다. 가장 큰 인상은 전작과의 접점인 ‘쫓고 쫓기는’ 추격이다. 단 두 편의 필모그래피로 해당 감독에 대한 평가는 분명 무리수가 따른다. 하지만 영화란 이름의 콘텐츠 상품을 돈을 주고 사는 관객 입장에선 새로움이 필요하다. 단지 ‘추격’이란 한 단어를 놓고 본다면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이 ‘추격자’를 만든 나홍진과 하정우, 김윤석이기에 더욱 짙었다.
두 번째는 죽어버린 캐릭터다. 영화 전체가 애당초 구남의 얘기였기에 그의 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에게만 주목된 시선 탓에 다른 캐릭터의 무게감이 조금은 쳐지는 느낌이 든다. 특히 ‘면가’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일말의 설명도 없는 점은 다소 맥이 빠진다.
이밖에도 각자의 캐릭터가 보인 집착의 이유도 생략돼 관객에 따라선 듬성듬성한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느낌도 들 듯하다.
하지만 ‘황해’란 이름의 제목처럼 거대 도시 속에 떨어진 구남의 여정을 처연함으로 마무리 지은 황량한 결말은 휘발성 강한 감성의 화약고를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하정우와 김윤석 두 ‘본좌’의 연기가 더해지니 두 말하면 잔소리에 가깝다.
완벽에 가까운 무결점은 아닐지라도 ‘황해’는 분명 올해를 매조지 할 작품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그렇게 불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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