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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네필 문화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그가 이제 겨우 첫 평론집을 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책을 낸다는 것이 생각을 더 펼치지 못하고 정지를 요구하는 일이라면 굳이 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이것이 그가 지금까지 평론집 출간을 미뤄 온 이유의 전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평론집을 기다렸다. 그의 평론집이 없다는 사실을 의아해했다.
결국 그는 영화가 자신에게 준 우정과 기쁨의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길 원하는 마음을 참지 못했고, 그 마음을 고스란히 책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했다. 또한 지구상에서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강아지 ‘올드독’의 지혜를 자신의 글 가까이에 두기를 원했다.
올드독은 만화가 정우열의 페르소나 캐릭터로, 정우열은 작가를 자신의 ‘영화적 아버지’라고 고백하며 그를 향한 존경과 우정의 마음으로 책의 삽화를 그렸다. 이제 정성일과 ‘올드독’ 정우열은 영화라는 세상이 우리에게 준 우정에 대해서 글로 또 그림으로 얘기한다.
이 책은 작가가 영화를 생각하는 ‘좌표’, 세상을 경험하는 ‘감각’, 영화로부터 구하는 ‘배움’의 글 38편을 실었다. 작가가 ‘올드독’ 정우열에게 보내는 ‘우정의 프롤로그’와 ‘카페 느와르’를 찍은 후 영화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척도를 제시한 부분도 담았다. 정우열은 역시 고마움을 표현한 작가에게 카툰과 일러스트로 영화적 발견을 화답했다.
책의 제목은 철학자이자 영화를 사랑한 들뢰즈가 쓴 글에서 빌려 왔다. 정성일은 들뢰즈의 글과 생각으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었고, 세상과 영화 사이의 배움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는 “영화를 사랑하는 건 영화가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단언한다.
행동을 완수하기 위해서 죽음의 시간으로 들어서는 듯한, 거의 목숨을 건 영화 읽기. 정성일의 평론집을 기다려 온 독자들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준 그의 ‘열정 혹은 수난’으로부터 영화를 사유하는 계기와 시간을 다시 한 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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