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인 시어도라 테일러는 그가 맨해튼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시어도라 테일러는 “그가 인생을 즐겼으며 음악은 그의사랑이었다”고 말했다.
빌리 테일러는 수십년간 연주자와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찰리 파커나 디지 길레스피,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거장들과 공연하는 등 연주자로서도 뛰어난 활동을 펼쳤지만 그보다는 재즈부흥사,재즈교육가,재즈방송인으로 더 알려졌다.
저지시티대학에서 재즈 역사를 강의하는 아널드 스미스는 친구였던 그에 대해 “이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변자의 한사람이었으며 나나 다른 사람들도 그가 재즈를 위해 자신의 재즈피아노 연주를 희생시켰다고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테일러 박사라는 칭호를 좋아했던 그는 1950년대에 처음으로 TV 스튜디오 오케스트라를 이끈 사상 최초의 흑인이었다.
그는 도심지를 돌면서 동네 주민들을 위한 옥외 무료 재즈연주 공연을 갖는 1960년대의 재즈모바일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공영라디오방송인 NPR의 인기 재즈쇼 진행을 1977년부터 1982년 까지 맡았으며 1983년에는 에미상을 수상했다.
테일러에게 재즈는 미국역사를 말해주는 핵심적인 음악형식이었다.
테일러는 “당신이 정말로 그것(재즈)에 귀를 기울이고 연구한다면 당신이 미국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대학 법학교수 킴 테일러 톰슨은 그의 딸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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