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비극

(아주경제 오성민 기자) 인도 남동부 안드라프라데시주(州)에 사는 쇼바 스리니바스(30·여)는 지난 28일 자신의 몸에 등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불은 불을 끄려던 그녀의 남편 옷에도 옮겨 붙었고 결국 부부는 병원으로 옮겨진 지 3일 만에 사망했다.

10살, 13살의 두 아들은 조부모에게 보내졌다.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앞 못보는 할머니는 두 손자를 먹여 살릴 일이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부부는 사고 전날 빚 문제로 심한 말다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쇼바는 마이크로파이낸스(소액 신용대출) 사무소로부터 1만2000 루피(약 30만원)를 빌렸고 최근 대출 상환을 독촉받아 왔던 것.

지난해 10월 안드라프라데시주 의회는 서민 대상 무담보 소액대출회사들의 대출과 채권추심 방법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성 채무자들에 대한 대출금 상환 독촉은 여전한 상황이다.

인도 마이크로파이낸스 규모는 2010년 9월말 현재 53억 달러. 이 가운데 3분의 1이 안드라프라데시주에 집중됐다.

주 정부에 따르면 이곳에서 작년 3월1일부터 11월19일까지 마이크로파이낸스로 인해 자살한 사람은 70여명에 달한다.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소액신용대출 평가사인 마이크로 크레디트 레이팅스 인터내셔널의 말콤 하퍼 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맹 여성들에게 대출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 회사는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질책했다.

여성의 경제력을 증대하기 위한 지원이 결국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고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빈민운동가이자 경제학 교수 출신인 그라민 은행 창업자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30여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한 가난한 여성에게 27달러를 빌려준 것에서 출발했다.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의 선구자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유누스 총재는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는 빈곤층에 소액 자금을 대출하는 사업을 1976년에 시작했다.

이후 98억7000만 달러를 대출해 주고 87억6000만 달러를 회수했다.

돈을 빌린 833만명 가운데 97%는 여성이었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분명 이윤을 남기는 비즈니스지만 소액의 돈이라도 낮은 금리로 담보없이 대출해 주기 때문에 자선사업에 가깝다.

그러나 인도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은 본래 목적에서 멀어져 사채업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한 재테크 관련 책에서 읽은 '경제는 약자의 눈물을 먹고 산다'는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돈과 신용이 없는 사람, 남자보다는 여자. 경제적 약자인 이들을 위한 사업은 발상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유누스 총재가 횡령혐의로 구설수에 오르긴 했지만 그라민은행은 빈곤층 아이들을 위한 학자금 대출 등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 마련하고 있다.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사회적 책임감과 역할을 더욱 무겁게 짊어지는 모습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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