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밖으로 나오자 매서운 칼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여행 출발 전부터 이곳의 강추위 얘기를 듣고 온 몸을 꽁꽁 무장한 탓인지 생각했던 것 보다는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안내원은 요 며칠새 추위가 한층 수그러들었다고 귀뜸했다.
중국 동북에 위치한 지린성 창춘의 추위는 매년 10월 말 시작됐다가 다음해 3월 말쯤 돼야 서서히 풀린다. 이때문에 예전의 경우 4~5개월이나 지속되는 지루한 창춘의 겨울은 관광산업의 ‘불청객’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겨울철 추위와 눈을 지린성 만의 독특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켜 나가면서 겨울철 창춘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급속히 늘어났다. 그 동안 백두산을 거쳐가기 위한 하나의 경유지로만 여겨졌던 창춘이 진정한 관광목적지로 거듭나고 있다.
◇ 눈의 고향 = 1일 저녁 중국 창춘 시내 최고급 호텔로 꼽히는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창춘시 정부 주최 만찬에는 창춘 빙설제와 세계적인 크로스 컨트리 대회인 바살로페트(Vasaloppet)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백 여명의 축제 참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저 멀리 노르웨이에서 바살로페트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스펜서(여·17)는 “오슬로에서 TV로 여러 번 창춘 바살로페트 중계방송을 본 적이 있다”면서 중국 창춘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녀는 특히 “중국에도 이렇게 스키 타는 사람이 많을 줄 상상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관수선(管樹森) 창춘시 징웨탄(淨月潭) 관광개발구 관리위원회 주임은 “2003년 처음 이 대회가 열렸을 때만 해도 참가인원 수가 700명도 채 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올해에는 프로 스키선수 1000명, 스키 애호가 4000명, 일반 시민 1만 여명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살로페트 대회는 창춘시가 투자를 유치하는 주요 창구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03년 첫 대회 개최 이래 9년 간 이 대회를 통해 창춘시가 투자 받은 금액은 총 1000억 위안을 넘어섰다.
창춘시 징웨탄 관광개발구는 지난 해 101억 위안 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올해에도 전 세계 25개 기업과 총 150억9000만 위안 어치 투자 프로젝트 협정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바살로페트 대회가 개막하는 징웨탄 관광개발구에 도착했다. 영하 20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회장 내는 스키 매니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개막식이 끝나고 ‘탕’하는 소리와 함께 1만 5000여명의 스키 대회 참가자들이 50km에 달하는 코스를 힘차게 달렸다.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스키어들은 장장 3시간에 달하는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대회장 바로 옆에서 개막한 빙설제는 겨울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해줬다. 12가지 띠 동물, 메두사 머리상, 눈의 궁전 등 눈으로 만든 56개 조각상 앞에서는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개막식장 뒤의 거대한 빙벽에 입체적으로 새겨진 스키어들의 모습. 금방이라도 벽을 뚫고 나올 것처럼 표정과 움직임이 생생했다. 가로 50m, 세로 10m에 달하는 빙벽에 조각상을 새기기 위해 총 1만2000㎥의 눈이 사용됐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장대한지 짐작이 갔다.
지린성이 자랑하는 겨울철 최대 볼거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창춘시에서 동쪽으로 약 150km 거리에 위치한 지린시 쑹화장(松花江) 변에 위치한 우쑹다오(霧淞島·무송도). 이곳은 지린성의 폭설과 혹한이 빚어낸 최고의 천연 생태자연 관광지다.
“지린성의 쑹화장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습니다. 영하 20~30도에도 얼지 않는 강물이 흘러가며 피워내는 안개로 인해 송화강변 나무들은 여름철에도 눈꽃이 피어있는 것과 같아요. 이를 우쑹(霧淞·성에꽃)이라고 부르지요. 특히 이렇게 추운 겨울철에는 더더욱 절경을 이룹니다.”
버스 안에서 안내원이 하는 말을 들으며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칼바람을 맞고 선 앙상한 나뭇가지들 위에 하얀 눈꽃과 같은 솜이불을 덮고 있었다. 어찌 보면 바닷속 산호초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배를 타고 쑹화장을 건너 우쑹다오에 들어서자 순백의 눈밭의 나무 위에 핀 성에꽃이 관광객을 반겼다. 여기저기서 “워더톈아 (我的天· Oh my god)”하는 탄성 소리와 함께 찰칵 찰칵 필름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를 작은 카메라 안에 모두 담을 수 없음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지우자이거우(九寨溝), 황산(黃山), 장자제(張家界) 등 중국 내 어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쑹다오에는 원시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역사문화의 고장 = 창춘은 과거 일본 침탈 역사의 생생한 현장이다. 창춘 시가지를 거닐다 보면 유난히 과거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띈다. 1932년 지난 일본에 의해 괴뢰 만주국이 성립되고 창춘은 만주국의 수도로 지정되어 일본 지배를 받았기 때문.
안내원은 “지난 1931년 9월부터 1945년까지 일본 관동군이 만주를 중국 침략을 위한 전쟁의 병참 기지로 만들고 식민지화하기 위해 만주국을 세우고 창춘을 수도로 세웠다”면서 당시 일본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가로 세로로 쭉쭉 뻗은 바둑판 모양의 도로며, 오사카성을 본딴 옛 관동군 사령부 건물(현 지린성 공산당위원회 건물), 그리고 지금은 웨이만황국박물원이 된 옛 만주국 궁전 등 곳곳에 일본 침략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특히 웨이만(僞滿)황궁 박물원 내 동북함락역사관 한쪽 벽 전체에 거대하게 새겨진 ‘勿忘 9.18(9.18을 잊지 말자)’ 휘호에서는 일본 관동군이 9.18 사변(만주사변)을 일으킨 ‘국치일’을 잊지 않겠다는 중국인들의 강한 의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
중국에서도 반일(反日) 감정이 강하기로 유명한 동북인의 마음은 발 마사지사로 일하는 허난성 출신 류 모씨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중국 내 혐한 정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중국인이 일본인을 비하할 때 쓰는 ‘르번꾸이즈(日本鬼子 일본귀신새끼)’라는 욕까지 쓰며 “중국인은 일본인을 싫어하지, 한국인은 좋아한다”고 호감을 나타냈다.
실제로 한류 열풍은 창춘 시내에서도 불고 있었다. 창춘시 구이린루(桂林路)에 자리잡은 ‘코리아 타운’ 내 한인 미용실에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최신 유행 헤어 스타일을 시도해보려는 젊은 남녀들로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지난 2004년 설립된 이곳은 총 면적은 본래 1064㎢로 한 때 하루 20만명이 다녀가고, 한인 식당·미용실·오락실·당구장 등이 100여 개까지 달했지만 지금은 ‘한국어 간판’만 간간이 눈에 띌 뿐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그래도 낯선 타국 땅에서 ‘돌솥비빔밥’ ‘한국 가라오케’ 등과 간판을 보니 반갑기만 했다.
◇ 자동차 본고장 = 사흘 간의 창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에서 창춘 공항으로 향하던 길. 아침 출근시간 창춘 시내 도로는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고 있었다.
이번 여행 내내 창춘시 교통정체 현상을 경험하면서 ‘베이징, 상하이도 아닌 창춘인데 이렇게 길이 막힐 수 있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특히 유독 이치(一汽) 자동차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안내원은 “중국의 이치자동차는 바로 지린성 토종 기업입니다. 창춘은 중국 최대 자동차공업도시로 중국의 ‘디트로이트’라 불리고 있지요. 창춘 시민 3명당 1명은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자동차 산업이 발전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지린성 창춘시내에 위치한 이치자동차 본사 전경 |
지난 1956년 중국의 첫 번째 자동차를 생산한 이래 중국의 3대 자동차 그룹 중 하나로 급성장한 이치 자동차는 53년 후인 2009년에는 중국 1000만번째 자동차를 생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재 이치 자동차는 창춘시 경제의 50%를 담당하고 있을 만큼 지역경제에 이바지 하고 있다.
특히 창춘 시민의 이치 자동차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창춘 출신의 한 친구는 마오저둥(毛澤東)에서부터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치자동차의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 훙치(紅旗)를 애용했다며 이치자동차의 중국 내 위치는 상하이자동차나 둥펑자동차를 뛰어넘는다고 높이 평가했다.
물론 현재 창춘의 경제규모는 선양, 하얼빈 등 동북 3성 성도 중 후발에 속한다. 그러나 경제성장 속도 만큼은 가장 눈부시다.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지린성 GDP 증가속도는 13.3%로 전체 성 시 자치구중에서 8위를 차지했다. 반면 랴오닝성과 헤이룽장성은 각각 13.1%, 11.1%로 10위, 20위에 머물렀다.
이치 자동차가 항상 강조하는 ‘콰이저성, 만저쓰(快則生 慢則死·빠르면 살고 느리면 죽는다)’라는 말처럼 이제 지린성은 무서운 속도로 중국 동북지방의 새로운 성장점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