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와 같은 물가안정을 위한 거시정책 수단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물가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통해 물가안정을 꾀하게 됨으로써 더 큰 물가인상 요인을 유발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부처 간 월권 논란도 일고 있다.
◆물가vs성장·수출 사이의 딜레마
물가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금리정책과 같은 거시정책 수단을 쓰면 성장과 수출이라는 정부의 또 다른 정책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5%내외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면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3% 수준으로 억제한다는 것을 경제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또한 수출은 지난해보다 9.8% 증가한 5130억 달러, 수입은 14.6% 증가한 4880억 달러로 25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고성장과 수출증대, 물가안정을 동시에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다 보니 금리를 올리기도, 유지하거나 내리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우선 성장이 타격을 받는다. 또한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원화를 거둬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원화 가치의 상승을 초래해 환율을 하락시켜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다고 심화되고 있는 물가불안을 고려하면 금리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대로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가 고성장과 수출증대, 물가안정을 모두 이루려는 정책목표를 수정하지 않는 한 금리를 통해 물가안정을 이루기는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정부나 한국은행은 금리와 같은 거시정책 수단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에 소극적이고 미시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오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해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부처 간 월권 논란
이렇게 거시정책 수단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물가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의 강화이다.
실제로 정부는 물가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오는 13일 정부가 발표할 물가대책의 주요 내용은 △지방·중앙 공공요금 인상 최대 억제 △대학 등록금 인상 억제 △물가불안 품목의 담합 감시 강화 등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런 직접적인 물가 통제가 물가상승 압력을 가중시키고 부처 간 월권 논란까지 일으키는 등 정부정책의 신뢰까지 떨어뜨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일 인사·조직 쇄신을 단행해 사무처장을 반장으로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T/F(이하 T/F)‘를 공정위 내에 설치했다.
T/F는 앞으로 △가격담합,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리베이트 제공 등 가격인상을 유발하는 불공정행위 조사·시정 △실정법에 위반되지는 않더라도 가격거품 현상과 원인 등을 분석하고 사회적 공론화 △가격상승을 초래하는 유통체계의 구조적 문제 분석·개선 △가격경쟁을 저해하는 각종 경쟁제한적 제도와 독과점 시장구조 개선 등의 일을 하게 된다.
이 중 ‘실정법에 위반되지는 않더라도 가격거품 현상과 원인 등을 분석하고 사회적 공론화’는 공정위보다 기획재정부에서 해야 할 일에 가깝고 ‘가격상승을 초래하는 유통체계의 구조적 문제 분석·개선’은 지식경제부에서 해야 할 일에 가깝다.
하지만 공정위는 인사·조직 쇄신을 발표할 때 타부처와 어떠한 협의도 하지 않았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는 “물가안정을 위해선 금리정책·환율정책 등의 일반적 거시정책 수단을 기본으로 하되, 선별적 미시정책 수단으로 보완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부는 5% 성장을 위해 금리·환율 정책은 묶어놓은 상태에서 공정위를 동원해 직접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러한 정책기조는 단기적으론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인플레 압력을 잠복시켜 나중에 더 큰 가격상승으로 폭발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