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에서 이사를 지낸 뒤 1998년 유럽중앙은행(ECM)에 들어가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면서 유로화 설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금융전문가 오트마어 이싱은 유로존 회원국들이 각국의 지출을 서로서로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유로화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싱은 런던에 있는 ‘공적(公的)통화․금융기관포럼’이라는 단체의 기관지에 이런 내용의 글을 기고했는데, 이번 주 중 발간될 이 기고문을 뉴욕타임스가 사전 입수해 11일 공개했다. 이 포럼은 각국 중앙은행장들과 국부펀드 대표들의 모임이다.
이싱은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 소재 ‘금융연구센터’의 소장으로 일하면서 금융정비 작업과 관련하여 독일정부에 조언을 하고 있다.
이 기고문에서 이싱은 “개별 국가들의 재정정책이 단일통화 지역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정책 당국자들은 통화동맹의 기능을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통화동맹의 생존 자체를 의문에 빠지게 했다”고 말했다.
세계 금융계에서 차지하는 이싱의 위상을 감안할 때 그의 이런 언급은 유로화 신뢰회복에 필요한 조처들을 유럽의 정책당국자들이 취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투자자들의 불안에 더욱 불을 지를 것이 뻔하다.
이싱은 “정치가 이번 위기를 통화동맹의 기본 틀을 강제적으로 개선할 기회로 삼지 않았다는 데 대해 진정으로 우려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인식은 그가 유로화 도입의 핵심인물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코메르츠방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죄르크 크래머는 “ECB 전직 이사에게서 나온 이 말은 매우 비관적인 언급”이라며 “이 기고문에는 실망이 잔뜩 담겨 있다”고 말했다.
기고문에서 이싱은 나쁜 정책을 추구한 국가들을 구제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희생을 딛고 흥청망청 사는 국가들에게 공개적인 초대장을 더 보내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위기로 인해 통화동맹의 기본설계 결함이 추가로 드러났다”며 “이는 통화동맹이 회원국들의 적절한 경제정책 수행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명실상부한 정치적 동맹은 비밀리에 구성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정치 지도자들이 유럽 시민들 등 뒤에서 더 강력한 정치적 동맹을 창설하려는 시도에 대해 경고했다.
이싱은 만약 기강이 바로 선 국가들이 기강이 흐트러진 국가들에 보조금을 주는 사실상의 정치적 동맹을 지도자들이 창설한다면 오래지 않아 정치적 동맹은 물론 다른 정책들까지 반대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그러한 반대는 극단적인 집단들뿐만 아니라 독일 등의 제도권 정당으로부터도 제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싱은 정부지출을 더 강하게 규제하는, 자동 제재장치를 갖춘 규칙의 제정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독립적인 기관들이 국가들의 규칙 위반 여부를 판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싱은 유럽통화동맹은 아직 희망이 있다면서 “유럽은 과거 거듭된 위기를 겪었으며 매번 더 강한 모습으로 등장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비관적 전망으로 장식했다. 그는 일부 국가들이 그릇되게 행동하는 한 “더 많은 긴장 때문에 유럽통화동맹의 존재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송철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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