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오민나 기자)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천장'을 언급한 적이 있다. 유리천장에 막혀, 또는 여성의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이른바 ‘취집(결혼후 전업주부를 직업을 삼는 것)’을 로망으로 삼는 여성이 점점 늘고 있다. 결혼 후 남편 따라 외국으로 가 시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꼽는 여성도 있다. ‘여자 인생에서 최고의 전환점은 결혼’ ‘성공적인 결혼은 층계를 걸어갈 여자를 엘리베이터를 타게 만든다’ 등 결혼을 둘러 싼 수많은 이야기들은 검증되지 않은 채 여성들 사이에서 신화가 된다.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의 저자 레슬리 베네츠는 이러한 말에 분기탱천하며 반기를 든다. 베네츠는 1970년대‘뉴욕타임스’에서 근무했으며, 미국 대선과정을 취재한 첫 ‘여성’기자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행복에 관한 도발적 담론을 제시한 이 책은 곧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책이 발간된 2007년 당시 미국에서는 신자연주의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이 책은 ‘돈 많은 남자를 잡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대중의 신화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저자는 일자리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나, 직장생활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결혼을 일종의 ‘도피처’로 여기는 미혼여성에게 일침을 놓는다. 각계 각층과의 인터뷰를 예로 들어, 경제적 자립 없이는 결혼 역시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저자는 보다 긴 호흡으로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여성에게 조언한다. 사람의 직업 인생은 40년 중 전업주부 기간은 10년에서 12년 정도인데, 당장의 육아에 급급한 젊은 여성들이 이 사실을 간과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또 ‘워킹맘’이 아이의 교육에도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당신은 자신의 직업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아이들에게 얘기해준 적이 있는가? 아이에게 새로 맡은 업무에 대해 말해주려다가도 혹시 ‘엄마에겐 너보다 일이 더 소중하단다.’라고 받아들일까봐 망설이는 게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의 현실이다. 그들은 아이가 자신은 뒷전이라고 느낄까봐 일을 의무로만 표현한다. 일이 얼마나 즐거운 보상이 뒤따르는 좋은 선택인지 언급하지 않는다.’ 라는 부분은 그동안 많은 워킹맘들이 소리쳐 말하지 못했던 중요한 사실을 짚어낸다.
또 ‘전업주부가 되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 같지만, 실제로는 대다수 여성이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 여자가 자녀양육의 1차 책임자로서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고정관념 때문에, 여성들은 알게 모르게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다. 양육에 사람들은 이중적인 기준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어주지 않으면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같은 이유로 남성을 나쁜 아빠라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잣대는 여성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준다. 그러나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들과 종일 같이 있지 못한다고 해서 ‘시간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있다. 이어 저자는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사회학 교수 스캇 콜트레인의 말을 빌려, 배우자와도 부모의 역할과 가사일을 함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결혼 후 둘 중 하나를 포기하게 만드는 패러다임에 문제를 제기한다. 대신 워킹맘들에게 중요한 것은 양육과 일, 둘 다 해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며 이 시대 일하는 여성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저자는 삶의 두 영역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부터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그동안의 평가기준부터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저자에게서 이 책의 여성 독자는 앞으로 펼쳐진 ‘행군’을 함께 할 든든한 지원자를 만난 느낌이 들 것이다.
'삶의 두 영역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처음부터 완벽을 기대하는 것 그 자체가 문제'라는 말은 분명 ‘88만원 세대’로 전락하고 있는 20대는 취집을 꿈꾸고, 30대 골드미스는 결혼을 스스로 보류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의 현실에 생각할 문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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