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뮤지컬 배우 조승우의 아버지로 유명한 70년 대 톱 가수 조경수는 행복이 뭔지 도통 모르겠다고 노래했다. 이어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잖아요"라면서 '행복은 최소한 사랑하는 당신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뜻을 내비쳤다. 행복은 결국 사랑의 감정을 키우는 연애나 그 결과인 결혼 같은 달콤한 남녀상열지사라는 암시다.
행복은 곧 사랑일까? 1970년대만 해도 고개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소설가 최인호 원작 이장호 감독의 영화 '별들의 고향'을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70년 대 초반 시골에서 서울 사람의 꿈을 품고 무작정 상경한 경아(안인숙)는 공장에서 만난 남자와 첫사랑에 실패하고 부잣집 늙다리의 첩이 되었다가 다시 호스티스가 되고, 백수건달(신성일)과 동거하다 점점 신세가 추락하는 가련한 캐릭터다.
사랑에 치이고 남자에 배신당하고 술집 손님에게 천덕꾸러기가 되는 그녀는 결국 알콜 중독자가 되어 추운 겨울날 벌판에 쓰러져 죽는다. 이 뻔하디 뻔한 통속극은 서울의 수많은 또 다른 경아들의 눈물샘을 하염없이 자극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자그마치 서울에서만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고 한다. 관객 5만 명만 넘으면 대박 소리를 듣던 당시로선 요즘 1,000만 명의 기록과 맞먹는 쾌거가 아니었을까?
이런 절대적 공감의 숨은 키워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신성일의 유명한 대사 한마디가 하이쿠(일본 전통 한줄 시)다.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경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추워요. 안아줘요." 두말할 나위 없이 “행복 = 사랑”이다. 1970년대 경아들은 서울의 공단 지역에 전국의 수출자유공단에 도심과 변두리의 유흥가에 차고 넘쳤다. 그녀들의 서울 드림은 돈도 명예도, 종교도 저항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알콩달콩, 지지고 볶으면서 평범하게 살고픈 단순한 욕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이 행복한 삶이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어떤 삶을 행복하다 여기며 살고들 있을까?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대사처럼 냉난방 잘되는 40평대 아파트에서 거의 모든 가전제품을 거느리고 사는 전업주부의 삶일까? '성공하는 남자는 OO카드를 쓴다'는 대사 처럼 돈도 잘 벌고 남에게 두루 두루 인정받으며 승승장구, 폼 나는 남자의 삶일까? 아니면 적게 벌어 적게 써도 삼시 세 때 배부르고 맑은 공기 실컷 마시고 사는 귀촌·귀농의 삶일까?
다 별로라면 재수 좋게 번 떼돈으로 빌딩·상가 사서 임대료나 받고 심심하면 용돈 벌이 삼아 주식시장이나 기웃거리는 느긋한 재테크 라이프일까? 가진 돈 다 털어 골프장으로 온천으로 호텔로 전국, 전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의 삶일까? 아니면 산티아고아 올레, 둘레 길을 다 걸으며 아마추어 수행자로 자족하는 삶일까? 모든 허욕 다 버리고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처럼 사는 삶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어느 가난한 시인의 술안주가 되어 이리 저리 뜯겨도 좋은 명태와도 같은 삶일까? 스마트폰과 태플릿 PC와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 그리고 최소한도의 먹을거리와 잘 곳만 있다면 다른 간섭은 다 귀찮은 그런 삶일까?
도대체 2011년 우리들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혹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나라에서 연금과 보험으로 이것 저것 다 보장해 주는 그런 삶은 아닐까? 부자들은 알아서 척척 거액을 내놓고 일자리 끊어진 서민들은 그런 돈을 착착 받아서 생계를 이어가다 요행히 장사도 잘되고 하여 자기 번 돈을 또 사회에 턱턱 내놓는, 그렇게 수리 술술 돌아가는 나이스한 세상살이 혹시 그런 꿈 같은 삶일까?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행복이란 무엇인가?’도 딱 부러지는 정답이 있을 리 없다. 각자의 가치관과 취향, 기분과 배짱에 맞는 모든 삶은 다 행복하다는 식의 범신론적인 화두로 남겨두어도 누가 뭐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2011년 인간의 철학과 종교, 집단지성, 권력적 통제도 죄다 벗어난 미증유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40년 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다양해졌다. 곧 행복의 다다익선이다. 게다가 이런 행복감을 느낄 만큼 면역력이 생기고 선수가 된 나와 우리가 또한 서로를 행복하게 한다. 곧 곱하기 행복이다.
상황이 어떻건 행복은 긍정의 법칙 위에서만 가능한 그 무엇 같다. ‘모두의 행복을 추구한다’ 입으로는 나불대면서 매사 인상이나 찌푸리는 마인드로는 결코 그 느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아, 행복하다’말하면 그때부터 행복해지는 존재인지 모른다. 우리는 아직 생을 즐길 기회를 갖고 있다. 살아 있다. 얼마나 행복한가? [트렌드아카데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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