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생트집> 검사는 기자가, 판단은 관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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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1-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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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시비가 아니다. 아니 괜한 시비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계 종사자로서, 또 신생매체의 영화 담당기자로서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올릴 공간과 자격 정도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김재범의 ‘생트집’. 까닭이 있든 없든 기자의 생트집은 전적으로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영화감독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누굴까. 말 안 듣는 배우?, 일 못하는 스태프?, 제작비 움켜쥔 프로듀서?, 아니면 악플러?. 모두 다 틀렸다. 바로 영화담당 기자다. 실제 한 감독님이 솔직하게 털어 놓은 말이다.

이 발언에 대한 기자 개인의 생각을 밝힌다. 기자란 직업, 기자란 이름을 달고 사는 인간들의 속성상 작품 속에 녹아든 노력과 땀의 과정을 보기 보다는 그 안에 감춰진 실수와 틈을 노린다. 그 실수와 틈을 텍스트란 콘텐츠로 온라인에 퍼트리니, 감독님들 입장에서는 공인된 안티이자 또 다른 의미의 악플러가 아니겠는가.

취재 현장을 돌며 여러 감독님들과 만나고 영화계 관계자들과의 얼굴을 마주하며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이번 영화 어떠냐.” 글쎄 기자란 직업군. 그 가운데 영화담당 기자들의 눈과 판단이 해당 작품을 만든 감독 머릿속까지 꿰뚫는 혜안이 아닐텐데 이 같은 질문이 매번 쏟아진다. 뭐 그럴 때마다 모범답안처럼 입에선 기계적으로 튀어나온다.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기자이기에 또 기자로서 하는 일이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분석과 장단점을 들춰내 영화 팬들의 취사선택을 돕고 있다. 자기만족이자 스스로에 대한 면죄부로 들릴까. 평소 얼어붙은 동태눈을 가진 기자지만 언론시사회가 열리면 해당 영화의 틈을 노리는 ‘매의 눈’으로 돌변한다. 기자 본인이 그렇다는 얘기다. 다른 기자들은 어떨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뭐 이 코너는 기자 본인의 이름으로 직장으로부터 장기 임대계약으로 얻어낸 아늑한 보금자리이니 마음대로 주절거려 보겠다.

기자들이란 생리학적으로 수십 개의 필터링을 덧댄 눈을 갖고 있다. 특히 이름 있는 중견 감독이나, 전작의 흥행 기록을 가진 감독 작품을 보는 눈은 흡사 서슬 퍼런 단두대로까지 변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독과 스태프들의 눈물과 피땀 어린 결과물을 토막 낼지 노려본다. 글쎄, 기자들에게 이 같은 권리가 있을까. 그들의 노력을 한낱 텍스트로 재단해 평가와 등급을 매기는 힘을 대체 누가 줬단 말인가.

최근 한 감독님과의 만남에서 있던 대화다. 배수의 진을 치고 완성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 지친 나머지 쏟아낸 넋두리일 것이다. 자신의 영화를 외면하는 팬들도 스스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만, 기자 개인의 잣대로 결과물을 재단하는 시각이 매번 아쉽다며 하소연이다. 지난해 영화계 최대의 화제를 몰고 온 한 영화감독님을 보자. 자신을 매번 충무로의 희생양으로 표현하고, 이것을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 함량 미달의 작품을 매번 포장해 냈다. 일부 대중은 그의 말솜씨에 매번 눈과 귀를 버렸다. 글쎄 기자의 지나친 비약이자 오버 텍스트의 만용일까.

어떤 시장이든 파이가 커져야 경쟁력도 커지며, 그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질도 올라간다. 그 만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진다. 좁게 보자면 무분별한 난립이 될 수 있지만, 긍정적으론 질적 수준의 향상을 꾀할 수 있다.

기자란 그렇다.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인들의 피땀이 서린 결과물에 이유 없는 칼질과 흠집 내기를 즐기는 사디스트도 아니다. 상품 유통과정의 한축을 담당한 단지 여과체로 표현하면 맞을까. 기자들의 텍스트 난도질에 좌절해 무릎 꿇은 감독님도 계실 것이고, 숨은 보석을 찾아낸 기자들의 눈도 있을 것이다. 단지 기자들의 역할은 이것뿐이다. 검사는 검사가 아닌 기자들의 몫이며, 판단은 판사가 아닌 관객들의 몫이다.

kimjb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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