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제(春節)연휴를 앞둔 27일 슈수이제는 외국인들로 북적거렸다. 바깥에는 관광버스가 수십대 주차돼 있고, 매장에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쓰는 외국인들과 이들을 상대하는 상인들의 설익은 외국어실력이 뒤섞여 이채로운 광경을 연출한다.
고객들은 여기서 파는 제품이 대부분 짝퉁임을 잘 알고 있고, 상인들의 호가를 믿지 않고 즐거운 흥정에 나선다. 상인들 역시 가짜임을 부인하지 않으며, 손님들의 과도한 흥정에도 장난으로 받아치는 여유가 있다. 지구상에 이처럼 드러내놓고 짝퉁을 파는 곳도 없을 듯 싶다.
1980년에 생겨난 슈슈이제는 당시 실크제품을 판매하는 초라한 동네시장이었다. 하지만 개혁개방의 열기를 타고 ‘저렴한 최신 고급브랜드 짝퉁제품’을 전면에 내세운 이 곳 상점들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관광객 소비자들이 늘면서 슈슈이제는 예전 점포들을 헐고 2005년 대형 쇼핑몰로 거듭났다. 건축면적 2만8000평방미터에 무려 1500개의 점포가 영업을 하고 있다.
점포사이를 지나가다보면 “루이비통, 구찌 제품 있어요”라며 호객행위를 한다. 놀라운 것은 어떤 한 호객꾼이 아예 두꺼운 루이비통 카달로그를 보여주며 "여기 있는 제품은 다 구비하고 있으니 원하는 제품이 있으면 말만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을 몇마디 붙여보자 “보고싶으면 따라오세요. SA급(스페셜 A급,짝퉁 중에서도 최상급을 말함)으로 전제품을 구비해 놨습니다"라고 했다.
종업원을 따라 간 곳은 쇼핑몰 밖의 다른 건물에 자리잡은 한 창고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다양한 명품 브랜드의 짝퉁제품들이 가득했다. 가죽의 질감이나 광택, 마무리, 프린트가 고급스러웠다. 창고의 규모는 비교적 넓었으며 30년 넘게 짝퉁영업을 해온 노하우가 녹아있는 듯 품목별로 잘 정돈돼 있었다. 실제로 그 두꺼운 루이비통 카달로그에 있는 제품들이 모두 구비돼 있었다.
이같은 짝퉁영업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5년 9월 프랑스의 루이비통, 이태리의 구치, 영국의 버버리, 룩셈부르그의 프라다, 프랑스의 샤넬사는 짝퉁제품을 팔고 있는 슈수이제를 법정에 고소했다. 이듬해 3월 베이징시 고급인민법원은 판결을 통해 슈수이제가 지적재산권을 침해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법원이 내린 배상금은 5개 명품 브랜드 회사에 각각 고작 2만위안(한화 340만원)에 불과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도 대대적인 짝퉁영업 단속이 이뤄졌었다. 하지만 암암리에 짝퉁영업은 활개를 쳤고, 각국 선수단들이 쇼핑하러 몰리면서 오히려 슈수이제는 한주에 1억위안(17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등 대호황을 맞았다. 또한 올림픽 초반에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부인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 세계 각국 귀빈들이 쇼핑을 즐기면서 그 명성을 드높였다.
슈수이제 이외에도 베이징에는 짝퉁시장이 몇 곳 있다. 슈슈이제와 쌍벽을 이룬다는 홍차오(紅橋)시장은 진주로 유명하다. 베이징 텐탄(天壇)공원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1층에는 전자제품, 시계, 악세사리 등이, 2층에서는 의류와 가죽제품이, 3층부터 5층까지는 진주를 비롯한 각종 보석류가 판매된다. 보석류외에는 일반적으로 홍차오시장의 물건이 슈슈이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한 곳의 베이징의 유명한 짝퉁시장으로는 야슈푸좡(雅秀服裝)시장을 꼽을 수 있다. 야슈푸좡시장은 2002년에 오픈한 곳으로 깔끔하고 청결한 쇼핑환경이 특징이다. 베이징 시내 중심 오피스타운인 싼리툰(三里屯)에 인접해 있어 이 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많다. '슈퍼A급' 짝퉁제품들이 대거 입점해 있다는 소문과 함께 최근 부쩍 성장했다.
(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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