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 일대 소수민족들은 설을 특별히 중시하지 않는 듯 했다. 다만 새해를 맞는 의식으로서 각 민족들의 전통 노래와 춤을 동원한 공연을 마을 곳곳에서 개최했다.
설 다음날 다리(大理)를 지나 리장(麗江)으로 향했다. 나시족 이족 바이족 등이 모여 사는 리장은 인종 전시장과 같은 곳이다. 리장으로 향하는 길 좌우에는 설산과 태양강이 펼쳐졌다. 빼어난 자연환경을 뜻하는 '산칭수이슈(山淸水秀)'라는 중국말이 딱 어울리는 풍광이었다.
고성(古城)인 리장은 고풍스런 모습과 거무 튀튀한 검회색 기와 지붕들이 인상적이었다. 기와지붕은 여우가 머리를 처들듯 날렵한 모양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찌보면 학이 날개를 편듯 사뿐해 보이고 또 달리 보면 댕기머리를 양쪽으로 땋아 내린 듯 청초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리장 근처 산간 마을에서 한 농부를 만났는데 그는 특이하게도 나비를 사육해 문화 여행상품으로 판매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이 나비 농사꾼은 나비 사육을 첨단 농업이라고 말한 뒤 결혼식 등 각종 행사에서 나비 수요가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발 2000m의 다랑이 논에서는 벼와 보리가 이삭을 패기 위해 한창 생육중이었다. 노란 유채꽃과 파란 보리밭, 여울물, 남방과일 손가락 고구마, 선인장 숲, 복숭아 꽃. 춘제와는 한참 거리가 먼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날 저녁은 여행길에서 만난 상하이 의료기기 벤처기업의 루오사장이 내는 만찬으로 즐겼다.
루오 사장은 상하이에 의료기기 공장을 두고 베이징과 광저우 시안 등 주요 도시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이차가 많아 얼핏 봐도 부인 같지 않아 보이는 젊은 여성과 함께 여행중이었다.
최근들어 중국에는 설 명절때 고향과 친지를 찾는 대신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루오사장도 내년 설엔 미국으로 여행갈 것이라고 말했다.
훗날 루오사장이 베이징에 출장왔을때 춘제 투어의 애프터 격으로 그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루오 사장은 이때도 지난번 그 묘령의 여인과 함께였는데 바이쥬(白酒 고량주)가 몇순배 돌고 제법 취기가 돌자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했다. 우리가 헤어졌던 몇 달새 결국 본부인과 이혼하고 재혼을 한 것이다.
리장은 고성외에도 수량이 풍부하고 비옥한 땅에 복숭아 꽃이 만발한, 풍광이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이곳을 벗어나 샹그릴라로 향하자 수십㎞도 안돼 가파른 협곡 등이 나타나면서 금새 지형이 험해졌다. 호랑이가 뛰어건넜다는 전설을 품은 후티에(虎跳)협곡을 건너면서 우리는 샹그릴라에 발을 디뎠다.
티벳트(시짱)의 풍물인 오색 깃발과 마오뉴(시짱의 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샹그릴라는 대체로 시짱보다는 비옥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파르고 높은 바위산과 소나무 숲을 지나면서 얼마전 유행했던 영화 무극의 촬영 현장도 돌아봤다. 샹그릴라는 예전엔 짱족들의 생활무대였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지금은 윈난땅이 됐다..
저녁에는 마을 회관의 높다란 누각에서 짱족들이 설을 축하하는 뜻에서 공연을 열렸다. 중국인들은 마치 공연단의 일원이 되기라도 하듯 놀이 마당에 뛰어들어 마음껏 흥을 발산했다. 저 멀리로 샹그릴라의 상징인 란위에(藍月) 설산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희끗 희끗 빛나는 설산과 살을 파고드는 영하의 차가운 기운속에 ‘춘제 투어’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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