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발 KE954편으로 이날 오전 10시께 인천공항에 도착한 교민들은 카이로가 심각한 치안공백에 빠지면서 사실상 무법천지로 전락했음을 현장감있게 증언했다.
카이로 탑승객 248명 가운데 한국인은 221명이었으며, 일부 교민은 공항에 마중나온 가족과 포옹을 하며 무사 입국에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집트를 빠져나가려는 승객이 한꺼번에 몰려 카이로 공항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고 대기 중인 승객 모두 겁에 질려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카이로에서 6개월간 체류했다는 고성현(38)씨는 "처음에는 심각하지 않은 줄 알았지만 사태가 벌어진 당일 통행금지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심각하다고 깨달았다"며 "사람들이 고함치고 하는 함성이 계속 들려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이집트에 아랍어 연수를 떠났던 남시호(23)씨도 "지난 금요일부터 경찰이 안 보이고 전화통신도 안된다. 인터넷도 끊겼다. 친구들과 자주 다니던 맥도날드와 피자헛을 약탈자들이 불태웠다고 들었다"고 했다.
교민들은 또 카이로 시내에서 경찰이 사라지면서 무질서에 약탈과 방화마저 횡행해 현지인들이 몽둥이나 큰 칼을 들고 직접 치안을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카이로에서 혼자 살았다는 김정민(30)씨는 "밤에 총소리, 공포탄 소리가 들려 무서웠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소리도 들린다. 이들은 각목, 야구방망이, 식칼 등을 들고 다닌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입국자들에 따르면 카이로의 한인 상점인 '토마토 슈퍼'도 약탈을 당했고 화약 냄새가 풍기는 거리에서는 약탈자들이 활보하고 있다.
물류 배송이 불가능해 지역 슈퍼마켓에도 판매할 물건이 없고 카이로 거주 외국인의 사재기로 현지인이 오히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다수 가정이 집에 남아 있는 식량으로 버티고 있다고 한다.
이집트 국적자인 모하메드 알리(35)씨는 "지금은 약간 진정됐지만 며칠 전 카이로는 아수라장이었다"며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보는 것 같은 기본적인 생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을 뿐 아니라 슈퍼마켓에 가는 것도 부인과 아이들에게는 혹시 위험할 수 있어서 당분간은 그동안 사다 놓은 음식을 먹으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유학생 신민경(24)씨 역시 "마트뿐만 아니라 작은 채소가게 앞에서도 차를 세워놓고 사재기를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집트 관광이나 성지순례 목적으로 카이로를 찾았다가 안전 등을 우려해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조기 귀국한 여행객도 있었다.
패키지여행으로 이집트에 들렀다는 유다영(41)씨는 "시위 사태로 일부 관광 일정이 취소됐고 시내 관광도 금지됐다. 관광객이 다 떠나 텅 빈 상태의 호텔이 많다"고 말했다.
이집트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달 25일부터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경찰서가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일부 폭도들이 상점을 약탈하는 등 정정불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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